1. 판매작품 : 특별 가격 작품 1점, 북한 유화 20점, 조선화 5점
2. 전시·판매기간 : 2024년 5월 27일 ~ 2024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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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가격 작품
작품번호 : 3003
작 가: 옥전(沃田) 강지주
제 목: 하경산수
크 기: 135x72
제 작: 1999년
가격 :
옥전(沃田) 강지주 (1936-) 약력
-1936년 전남 진도군 출생
-1961년 서라벌 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1968~1980년 국전 입선9회
-1978년 국전특선
-1979년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자연전
-1995년/1998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2회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1997년 광주비엔날레 초대작가
-1998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한국화 구상분과 심사위원
-2012년 <서울미술관> 국전작가회전
-2012년 제3회 한민족예술대상
-2004년/201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운영위원장
-2015년 <라메르 갤러리> 강지주 작품전
작가 사진 출처 : 국제뉴스<https://www.gukjenews.com/>
북한유화 20점
작품번호 : 1033
작가 : 김린권
제목 : 귀가길
크기 : 47x66
제작 : 1996년
가격 :
김린권 (1925 - 2004) 약력
-1925년 함경남도 인흥군에서 출생
-1938년부터 10년간 흥남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학교에 입학
-1951년 구소련 레닌그라드 레핀미술대학에서 6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문화선전성 지도원
-1964년-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영화 및 미술분과 위원장
-1965년 정종여와 함께 조선미술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1978년 공훈예술가
-1983년-1994년 문학예술작품 심사위원
-2004년 작고할 때까지 송화미술원 서기장으로 있었다.
-2004년 작고
작품번호 : 1054
작가 : 김상훈
제목 : 묘향산길
크기 : 240x95
제작 : 1989년
가격 :
김상훈 (1933 - 2017) 약력
-1933년 3월 평안북도 동창군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졸업 후 교원, 강좌장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여성영웅광부'로 2등상 수상
-1963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생의 노래'로 2등상 수상
-196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긍지'로 2등상 수상
-1982년 부교수
-1989년 학사학위
-1991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13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1996년 중국 연변에서 40여점을 가지고 미술작품전시회를 가졌다
-1997년 인민예술가
-2017년 작고
작품번호 : 1087
작가 : 김철헌
제목 : 고향집아침
크기 : 115x73
제작 : 2007년
가격 :
김철헌 (1937 - ) 약력
-1937년 량강도 보천군에서 출생
-1955~1958년 원산농업대학 졸업
-1958~1960년 평양연극영화대학 미술학부 졸업
-1960~1962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 졸업
-1962년 이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책임미술가
-1964년 예술영화 '정방공', '인민교원', '이 세상 끝까지' 영화미술창작
-196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영화미술 '정방공'(1등), '고향길'(1등) 수상
-1979년 공훈예술가
-1979년 다부작 예술영화 '이름없는 영웅들'(20부작) 영화미술을 창작했다.
* 김철헌은 오랜 동안 영화미술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생동하는 진실된 작품들을 창작해왔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번호 : 1126
작가 : 리상문
제목 : 바다와 소나무
크기 : 92x62
제작 : 2007년
가격 :
리상문 (1942 - ) 약력
-1942년 강원도 원산시에서 출생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5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앞에는 최전선'으로 1등상
-197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어린 머슴의 쪽잠'으로 1등상
-공훈예술가 (연도미상)
-1994년 인민예술가
* 리상문은 대단한 노력가다. 그가 창작에서 성공할 수 있은 것은 다른 미술가들 보다 2~3배의 노력을 더 한데 있다. 리상문은 그림을 쉽게 그리지 않고 힘들게 그린다. 형상적 의도가 관철될 때까지 다시 그리며 일단 완성하면 성공하는 미술가이다. 따라서 작품수는 적고 성과작은 많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96-698쪽 인용)
작품번호 : 1136
작가 : 리영호
제목 : 단풍든 대동문
크기 : 72x50
제작 : 2000년
가격 :
리영호 (1948 - ) 약력
-1948년 평안남도 순천시에서 출생
-1976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 유학과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설학부졸업
-1977년 이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82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
-1983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작 ‘동무는....’ 작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1984년 ‘파철’, 1985년 ‘소원이 풀리는 날’, 1986년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명화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작품번호 : 1139
작가 : 리영희
제목 : 노을진숲길
크기 : 72x50
제작 : 2002년
가격 :
작품 설명
출품작 '노을 진 숲길'은 2002년 작품으로 황혼의 마지막 잔영(殘影)을 받은 숲길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며 색채 배합이 뛰어난 수작으로 평가된다. 낙엽이 떨어진 늦은 가을 노을숲길이 왠지 쓸쓸한 고요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리영희 (1938- ) 약력
-1938년 황해남도 벽성군에서 출생
-1964년 평양미술대학졸업
-대학졸업 후 중앙미술창작사,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국 지도원으로 34년간 창작활동
-1978년 국가미술전람회 '길가에서' 3등상
-1979년 국가미술전람회 '산간마을의 기쁨' 입상
-1983년 국가미술전람회 '보금자리' 입상
-1990년 국가미술전람회 '양어장의 보람' 입상
-1992년 공훈예술가
* 그는 많은 수의 대외선전용 작품들도 창작하였고, 유화가로서 색채형상이 소박하고 깊이가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44-645쪽 인용)
작품번호 : 1146
작가 : 리정찬
제목 : 노을갈매기
크기 : 93x62
제작 : 2007년
가격 :
리정찬 (1948 - ) 약력
-1948년 평양에서 출생
-197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대학졸업 후 백호창작사에서 25년간 창작생활을 하면서 여러 형식의 미술창작사업에 관여했다.
-1997년 공훈예술가
* 리률선, 박진수로부터 미술교육을 받았고, 전통에 기초하면서 강한 색의 대조, 명암처리로 필체가 활달하고 색채형상을 다양하게 구사한 특기를 가지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60쪽 인용)
작품번호 : 1177
작가 : 림홍은
제목 : 정물(토마토)
크기 : 57x42
제작 : 1999년
가격 :
림홍은 (1914-1999) 약력
-황해남도 재령군에서 출생
-미술공부를 위해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했으나 학비 때문에 1937년에 중퇴
-1937-1940 아동잡지 '아이생활'의 편집장
-1940-1943년 선전(鮮展)에 3회 입선
-한국전쟁시기에는 전쟁승리에 대한 선전화를 집중적으로 제작하였다.
-북한 제1회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살지는 농촌'으로 3등상 수상
-1956년까지 로동신문사 화실편집원, 국립미술제작소 소장을 지냈다.
-북한 첫 아동영화 '금토끼와 은토끼'를 제작하여 아동영화 미술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80세 생일에 지금까지 창작한 미술작품 4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으며, 총 20점이 조선미술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1999년 작고
* 1994년 그의 80세 생일상을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생일상을 보내주면서 인민예술가 명예칭호를 수여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03쪽 인용)
* 1997년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219쪽에 달하는 '림홍은화집'을 발행하였다.
작품번호 : 1187
작가 : 박래천
제목 : 금강산가을
크기 : 165x65
제작 : 2002년
가격 :
박래천 (1936 - 2017) 약력
-1936년 11월 전라북도 금산군에서 출생하여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고급중학교 졸업
-1963년 평양미술대학졸업 후 40여년간 출판화 학부교원, 강좌장으로 계속활동하였다.
-196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모든 지역 모든 전선'으로 입상
-1985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0만정보의 날바다'로 입상
-198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기적소리'로 입상(대표작품)
-1991년 공훈예술가
-1994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탄광에 더 많은 갱목을'로 입상
-1998년 인민예술가
-2017년 작고
* 박래천의 유화는 구도적으로는 대각선상에 기본 묘사 대상을 설정하고 검붉은 색의 강렬한 색계조로 직관적 표현력을 강조해 준다. 박래천은 2000년 전후 북한 최초로 유화에 몰골기법을 적용하여 독창적인 조형기법을 완성하여 북한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박래천은 몰골화 기법을 유화에 적용하여 자기만의 새로운 화법으로 독창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북한 최고의 명화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 35년에 걸치는 후대 교육사업을 통하여 재능 있는 많은 선전화가들을 키워내는데 기여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17쪽 인용)
작품번호 : 1207
작가 : 박창준
제목 : 금강산 만물상
크기 : 109x81
제작 : 1999년
가격 :
박창준 (1925 - 작고) 약력
-1925년 평안북도 구장군에서 출생
-1947년 평양미술연구소 연구생으로 있다가 그후 평양미술대학 1기생으로 입학
-군복무(상위)후 1952년 복교하여 1953년 졸업
-졸업후 모교에서 교원이 되어 후비육성사업과 작품창작사업을 하였다.
-195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유화 '교대'로 입상되어 노대가들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그의 작품 중 1950년대 작품 5점을 포함하여 여러 작품들이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고년도 미상
* 박창준은 교육자로서 미술후비를 키워내는데 지혜와 정력을 쏟았으며 유화 최하택, 정유성, 허성욱 등은 그의 손때 묻은 제자들이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449쪽 인용)
작품번호 : 1218
작가 : 방인수
제목 : 백두산천지
크기 : 92x61
제작 : 2000년
가격 :
방인수 (1952 - ) 약력
-1952년 평양시에서 출생
-1974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설학부’ 졸업
-1975년 철도미술창작가,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현재 송화미술원에서 활동
-국가미술전람회에 여러 점을 입선/수상하였으며, 주로 외국 미술전시회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호평을 받은 작가로 광주 비엔날레 에도 출품했다.
-1999년 중국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1999년 미국 워싱톤에서 30여점을 가지고 개인전시회를 가졌다.
- '명화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작품번호 : 1241
작가 : 오광호
제목 : 독수리
크기 : 138x110
제작 : 2007년
가격 :
오광호 (1947 - ) 약력
-1947년 5월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75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졸업 후 백호창작사에서 활동하였다.
-인민예술가(수여년도 미상)
* 그의 전반기 작품은 구상이 대담하고 박력있는 필치로 묘사의 구체성으로 특징지어지며, 후반기 작품은 격식과 틀에 구애되지 않고, 내적감정을 살리는 것보다 외적인 측면을 중시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51-752쪽 인용)
* 그의 딸 오은별(1980년생)은 2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천재화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번호 : 1260
작가 : 장재식
제목 : 백두산의 봄
크기 : 206x94
제작 : 2003년
가격 :
장재식 (1932 - ) 약력
-1932년 3월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출생
-1946년 대구 희도소학교졸업 후 간판도색공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
-1962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 졸업(문학수/박창준/김형철이 지도)
-1991년 2월 김일성 주석상
-1997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상
-1997년 공훈예술가
-1997년 2차에 걸쳐 평양에서 개인미술전람회 가졌다.
*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43쪽에는 장재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장재식은 성공한 ‘백두산 화가’이다. 역대 우리나라 미술가들 가운데서 그처럼 백두산을 전문으로 그린 화가는 일찍이 없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미술 발전에 있어서도 주요한 성과로 된다”
* 1991년 2월 11일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 김일성은 한상익의 ‘국화’와 함께 장재식의 눈 덮인 ‘백두산’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42쪽 인용)
작품번호 : 1277
작가 : 정영화
제목 : 구월산가을
크기 : 124x95
제작 : 2002년
가격 :
정영화 (1948 - ) 약력
-1948년 11월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출생하여 강원도 평강군에서 고급중학교 졸업
-1977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졸업 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단장으로 활동
-1983년 전국선전화전람회 1등상
-1988년 국제미술전람회 2등상
-198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아침'으로 1등상
-198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저녁'으로 2등상
-1991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서화전시회에서 북측대표로 참석
-1992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땅과 전사'로 1등상
-1992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1993년 전국선전화전람회에서 1등상
-1994년 전국선전화전람회에서 금메달
-1999년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그의 그림은 농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상 깊은 생활의 한 순간을 전형적인 환경과 생활세부에 담아 집중시켜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깊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63-765쪽 인용)
작품번호 : 1318
작가 : 최원수
제목 : 련주담
크기 : 109x79
제작 : 1998년
가격 :
최원수 (1934 - 1998) 약력
-193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에 입학,
-1965년 그의 졸업작품이자 처녀작 '영옥이네 사형제'로 국가미술전람회 3등으로 입상하면서 천재미술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대학졸업 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평양미술대학교원, 강좌장, 학장으로 은퇴했다.
-1998년 작고
* 1976-1995년 북한에서 유일한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에서 20년 동안 학장으로 재직한 북한 최고의 미술교육지도자로, 그리고 화가로써 북한미술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그의 유화색감은 강렬한 색채를 즐겨 사용하여 강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성과있는 작품을 형상화하였으며, 작품수가 많지 않아 소수의 작품만이 소개되고 있다.
* 평양학생소년궁전 : 북한 공산당 고위급 자제들만을 위한 특수목적학교로 알려져 있다.
작품번호 : 1329
작가 : 최제남
제목 : 향산의 봄
크기 : 72x53
제작 : 2001년
가격 :
최제남 (1934-2015) 약력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출생
-1951년 평양미술대학 입학해서 한상익으로 부터 그림수업을 받았다.
-1952년 모스크바 방직대학 장식미술학부에서 5년간 미술수업을 받았다.
-1957년에 귀국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 교무부학장, 과학부학장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는 교육행정사업과 국가학위학직 심의사업, 대외사업 등으로 하여 창작적 작품형상을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980년 부교수
-1981년 학사학위
-1986-1994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문예총 중앙위원회 위원,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 미술부문국가심의위원회 위원
-1986-1995년 중앙미술창작사 사장
-1998년 조각가 곽태영과 함께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2015년 작고
작품번호 : 1340
작가 : 표세종
제목 : 백두산천지
크기 : 69x46
제작 : 1998년
가격 :
표세종 (1929 - 작고) 약력
-전라남도 목포시 남교동에서 출생
-1954년 일본 도쿄 무사시노미술대학을 졸업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미술교원으로 있다가 1962년 북한으로 입국
-1962-1982년까지 함경남도 미술창작사 창작실 미술가로 활동하였다.
-1986년 공훈예술가
-작고년도 미상
* 그는 창작의 길로 들어선 이후 거의 모든 국가미술전람회, 부분미술전람회에 빠짐없이 작품을 출품했고, 현실의 면모를 구체성을 가지고 사실주의적으로 진실하게 묘사했다. 또한 창작에서 불필요한 기교를 부리거나 형식에 치우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03쪽 인용)
작품번호 : 1348
작가 : 한상익
제목 : 련주담가을
크기 : 36x60
제작 : 1967년
가격 :
한상익 (1917 - 1997) 약력
-1917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
-1939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 1943년 군사훈련교관과 모욕을 당한후 중퇴
-1943년 선전에서 '청년'으로 입선, 1944년 선전에서 '가을의 작물'로 특선
-1947년 제1차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단강도'로 김일성표창장 수상
-1950-1955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55-1971년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와 강원도 현역미술가
-1997년 작고
* 1970년 53세에 결혼한 한상익은 안해(아내)의 도움으로 이후 10여년 간 200여점에 달하는 금강산과 원산의 이름있는 곳들을 낱낱이 그린 주옥같은 작품들은 한상익의 창작을 총화자울 수 있는 귀중하고 의의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64쪽 인용)
* 1991년 4월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 김일성은 한상익의 창작을 극찬한 교시를 하였다.
* 1992년 국제문화회관에서 생애를 총화짓는다고 말할 수 있는 개인미술전람회를 여는 날 안해와 14살난 딸애는 허리까지 굽기 시작한 한상익의 주름잡힌 얼굴이 때없이 밝아지고 20년은 더 젊어보여 졌다고 기뻐 말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64쪽 인용)
* 북한화단에서 유별난 생활경로와 특이한 창작적 개성으로 하여 성과작도 많았고, 실패작도 많았던 한상익은 추억깊은 화가로, 지울수 없는 화가로 인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61~365쪽 인용)
작품번호 : 1367
작가 : 홍종원
제목 : 금강산가을
크기 : 140x84
제작 : 2003년
가격 :
홍종원 (1928 - 2004) 약력
-1928년 12월 경기도 인천시에서 출생
-1948년 홍익대학 유채학부 입학
-한국전쟁 당시 홍익대학 미술학부에 같은 학생이였던 아내 변옥림과 함께 월북
-2004년 작고
* 그는 처녀작 '돌다리자국'을 그려 북한 전승기념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얻었고, 현재 김일성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김일성초상화를 그려 북한 최초로 김일성을 형상화하였다.
*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에 수차에 거쳐 출품하여 수상하였으며, 수십 점이 조선미술박물관과 조선력사박물관에 전시/보관되어 있다.
* 1993년 9월 북한미술박물관에서 북한 최초로 성대하게 가족미술전람회를 열었다.
작품번호 : 1379
작가 : 황헌영
제목 : 총석정노을
크기 : 65x80
제작 : 1989년
가격 :
황헌영 (1912-1995) 약력
-1912년 평양시 강남군에서 출생
-가정형편이 비교적 좋아 1932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선전 11회에서 '아침의 보통문', 18회에서 '창'과 '밭'으로 3점 입선
-1938년 동경 제국미술학교 졸업
-1946년 평양시 미술동맹 부위원장, 북조선 미술동맹 부위원장
-1948-1967년까지 평양미술대학 학부장, 강좌장
-1961년 부교수학직을 수여받았다.
-1969-1995 평안북도에서 창작사업을 했다.
-1995년 작고
* 황헌영은 평생 100점을 넘기지 못한 적은 수의 소품들을 내놓았지만 풍경화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개성이 뚜렷하고 풍부한 조형미를 이룩한 미술가이다.
* 평양미술대학 1회 졸업생부터 1960년대 말까지 졸업한 수백명이 그의 지도하에 기초를 닦고 유명한 미술가로 성장시켰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86-289쪽 인용)
조선화 5점
작품번호 : 2003
작가 : 강호
제목 : 고향집
크기 : 22x34
제작 : 1964년
가격 :
강호 (1908-1984) 약력
북한발행(1999년) 조선력대미술가편람(260~263쪽)의 4쪽 분량에 걸쳐 ’강호 약력서‘를 게재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8년 :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출생.
-1921년(13세) : 일본 경도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심부름꾼,우유와 신문배달 등 고학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1927년(19세) : 서울에서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동맹’에 가맹하여 김복진에 이어 미술부와 영화부를 책임지고 사업.
-1932년(24세) : 월간잡지 ‘우리 동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38년(30세) :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1942년까지 4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46년(38세) : ‘북조선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
-1946-1950년 : 한국전쟁 직전까지 남조선연극동맹서기장
-1950-1980년 : 평양연극영화대학과 평양미술대학 예술학부 교수학직을 수여받고(1961년), 학부장, 강좌장을 지냈다.
-1965년 :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영화미술 ‘생의 노래’로 2등상을 수상.
* '생의 노래'는 강호의 풍부한 창작경험과 예술적 분석력, 높은 조형적 창작능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1쪽 인용)
* 강호는 북한정권수립 초기 소위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북한무대 및 영화미술의 선각자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후비양성, 도서집필사업을 통하여 북한미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3쪽 인용)
* 현재 북한의 수채화를 대표하는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제자이며, 공훈예술가 강신범과 강신일이 강호의 아들이다.
*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채화 ‘교외에서’ 그림 뒷면에 자필로 ‘강호의 진품임’을 증명하는 자필확인서를 써준 경위는 다음과 같다.
북한창작사가 해외그림판매를 위해 북한화가들을 개별 방문하여 수집한 북한작품 중에서 강호의 그림을 발견한 장일남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어데서 선생님의 그림을 구하셨습네까" 하면서 해외로 팔려나간 것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면서 자필확인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작품번호 : 2004
작 가: 강호
제 목: 교외에서
크 기: 29x41
제 작: 1957년
가격 :
강호 (1908-1984) 약력
북한발행(1999년) 조선력대미술가편람(260~263쪽)의 4쪽 분량에 걸쳐 ’강호 약력서‘를 게재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8년 :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출생.
-1921년(13세) : 일본 경도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심부름꾼,우유와 신문배달 등 고학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1927년(19세) : 서울에서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동맹’에 가맹하여 김복진에 이어 미술부와 영화부를 책임지고 사업.
-1932년(24세) : 월간잡지 ‘우리 동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38년(30세) :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1942년까지 4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46년(38세) : ‘북조선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
-1946-1950년 : 한국전쟁 직전까지 남조선연극동맹서기장
-1950-1980년 : 평양연극영화대학과 평양미술대학 예술학부 교수학직을 수여받고(1961년), 학부장, 강좌장을 지냈다.
-1965년 :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영화미술 ‘생의 노래’로 2등상을 수상.
* '생의 노래'는 강호의 풍부한 창작경험과 예술적 분석력, 높은 조형적 창작능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1쪽 인용)
* 강호는 북한정권수립 초기 소위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북한무대 및 영화미술의 선각자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후비양성, 도서집필사업을 통하여 북한미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3쪽 인용)
* 현재 북한의 수채화를 대표하는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제자이며, 공훈예술가 강신범과 강신일이 강호의 아들이다.
*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채화 ‘교외에서’ 그림 뒷면에 자필로 ‘강호의 진품임’을 증명하는 자필확인서를 써준 경위는 다음과 같다.
북한창작사가 해외그림판매를 위해 북한화가들을 개별 방문하여 수집한 북한작품 중에서 강호의 그림을 발견한 장일남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어데서 선생님의 그림을 구하셨습네까" 하면서 해외로 팔려나간 것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면서 자필확인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작품번호 : 2106
작가 : 선우영
제목 : 금강산가을
크기 : 130x65
제작 : 2000년
가격 :
선우영 (1946-2009) 약력
-1946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 졸업
-1969-1972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1972-2009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2009년에 사망했다.
-198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장군님의 뜻을 안고'로 1등상 수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2009년 작고
*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특징은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의 묘사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의 생략과 같은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라고 선우영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8쪽 인용)
* 그가 창작한 ‘금강산석가봉’과 ‘범’은 세화기법으로 그린 조선화중에서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7쪽 인용)
작품번호 : 2017
작가 : 김상직
제목 : 내가의 정서
크기 : 151x71
제작 : 1998년
가격 :
김상직 (1934 - 작고) 약력
-1934년 4월 함경북도 라진군에서 출생
-로동을 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20대 때 유화 12점을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
-1961년 27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벽화 수업을 받았고, 대학시절 리석호로부터 다년간 개별지도를 받았으며 1965년에 졸업
-대학졸업 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조선미술가동맹, 평양미술대학교원과 강좌장,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생활과 후비육성사업을 하였다.
-1977년 벽화 '산전막에 남긴 사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수상
-1996년 새로 발족한 송화미술원 원장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 벽화창작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활동은 조선화창작으로 그의 전성기를 보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69쪽 인용)
작품번호 : 2228
작가 : 정종여
제목 : 양계장
크기 : 64x97
제작 : 1979년
가격 :
정종여 (1914-1984) 약력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둘째 아들로 출생, 호는 청계(靑谿)
- 1933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1940년 졸업
- 1936년~1944년 선전(鮮展)에서 입선 6회, 특선 2회
- 1951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1952년부터 10년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교원, 강좌장
- 1953년 이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 1955년 '굴진'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6년 '5월의 농촌'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8년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61년 이후부터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
- 1974년 공훈예술가
- 1982년 인민예술가
- 1978년 이후 동맹현역미술가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미술가로 활동
- 1984년 작고
작품번호 : 2233
작가 : 정창모
제목 : 가을국화
크기 : 40x131
제작 : 1998년
가격 :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 정창모는 풍경화와 화조만을 그린 작가이다. 인물화나 동물화 등 다양하고 폭이 넓은 영역을 형상화했던 다재다능한 작가는 아니다. 북한 발행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서 언급한 대로 정창모의 작품 수가 '수천 점'에 이른다고 한다면, 작품의 품질과 희소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우려해서 편람 533쪽 하단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정창모의 다작을 옹호하고 있다.
'정창모는 자기의 창작을 인민에 대한 복무로 접근시켰다. 항간에 많이 류포되고 있는 정창모의 그림은 한 점이라도 더 인민들에게 주자는 그의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창작 태도의 결과이다.’
*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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