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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별전

중국고화와 티베트불화 출품작

작품 문의:

010 4432 4676

rheo343@naver.com

 

 

 

작품번호: 8001

製 作 : 이공린 (李公麟) 1049-1106

臨 寫 : 정운붕 (鄭雲鵬) 1547-1621

작 품 : 이공린의 면주도 (免冑圖)를 정운붕이 임사(臨寫)함

크 기 : 310x24.5cm

 

 

작품의 가로길이가 길어 오른쪽 끝에서 부터 4장으로 나누어 촬영하여 올립니다.

 

정운붕 (310x24.5) 1

 

정운붕 (310x24.5) 2

 

정운붕 (310x24.5) 3

 

정운붕 (310x24.5) 4

 

정운붕 (310x24.5) : 처음과 끝 낙관 부분

 

정운붕 (310x24.5) : 두루마리표구

 

1. 이공린

 

-號는 용민산인(龍珉山人). 중국 송(宋)代의 도석인물화가로 당대의 고문진(高文進)이후 최고의 도석인물화가로 기록되어 있다. 벼슬은 중서문하(中書門下)를 거쳐 성책정관(省柵定官)이 되었으나 용민산에 들어가 회화에 전념했다. 그에 대한 기록은 아래와 같다.

 

<참고문헌>

- 1984년 일지사 간행. 김종태저서 “중국회화사” 147-148쪽

- 1999년 학고재 간행. 양신 등 5인 공저 “중국회화사 3천년” 112쪽

- 1993년 경인문화사 간행 “중국미술사전” 123쪽

 

2. 정운붕

 

- 戴進(대진), 吳偉(오위)와 함께 정운붕을 중국 明代의 3大家로 기록하고 있다. 정운붕은 이공린의 화법을 배워 독자적인 일가를 이룩하여 유일하게 (), ()의 대가들의 화법을 지녀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를 남우(南羽), 는 성화거사(聖華居士)休寧사람이다.

- 출처: 일지사 간행 김종태저서 중국회화사 242쪽

 

- 정운붕은 명대(明代) 말기의 도석 인물화에 뛰어났다. 그의 말기에는 대담한 필법을 구사했다. 대표작 “ 대사상”은 중국회화사상 최초로 서양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남색바탕의 흰옷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우아함과 화려함을 강조하며 공간이 넓은 느낌을 주는 구성이다.

- 출처: 학고재 간행 중국회화사 3천년 236쪽

 


작품번호: 8002

작 가 : 왕 휘 (王 翬) 1632-1717

작 품 : 래산적취도 (來山積翠圖)

크 기 : 61.5x116.5cm

 

왕휘 - 래산적취도(61.5x116.5)

 

왕휘 - 래산적취도(61.5x116.5) : 감정인 직인들

 

왕휘 - 래산적취도(61.5x116.5) : 감정인 필적1,2

 

 

- 왕휘는 字는 石谷, 號는 경연산인(耕煙山人으로 그가 태어날 때 방안에 묵향기(墨香氣)가 가득했다고 한다. 명말(明末)에서 淸朝(청조) 강휘년간에 이르기까지 300년간 중국산수화의 수령(首領)이였다.

 

- 왕휘의 조상5代가 모두 직업화가였음으로 어려서부터 그림과 인연이 깊었다. 1651년 왕감과 왕시민의 지도를 받고 정진했으며, 이들이 세상을 떠나자 왕휘는 강남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그 명성이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 출처: 학고재 간행 중국회화사 3천년 261~262쪽

 

- 왕휘는 58세 때에 강휘황제의 부름을 받아 남순도(南巡圖)를 그려 황제가 벼슬을 주려 하였으나 사양하고 강남으로 돌아가 회화에 전념했다.

- 왕휘의 회화는 초년에는 수윤(秀潤)하고 중년에는 침착하고 노년에는 유창하였다.

- 출처: 일지사 간행 김종태저서 중국회화사 288~291쪽)

- 참고: 경인문화사 간행 중국미술사전 212쪽 참조.

 

 


작품번호: 8003

작 가 : 정 섭 (鄭 燮) 1693-1765

작 품 ; 墨竹圖

크 기 : 28x94cm

 

정섭 - 묵죽도(28x94)

 

정섭 - 묵죽도(28x94) : 낙관

 

 

-號는 板橋, 淸 乾隆(건륭) 시대 進士로서 일찍이 縣長을 지냈으며 揚州八怪 중에 문인기질이 가장 많은 사람이다. 그는 삼절(詩.書.畵)에 모두 훌륭했으며 특히 竹畵가 유명했다.

- 출처: 일지사 발행 김종태저서 중국회화사 319쪽

 

- 양주8괴 중 가장 유명한 정섭은 그림과 서예로 두루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서체는 예서체와 해서체를 혼용한 것으로 양주8괴 중에서 특히 이름이 높았다. 정섭의 작품은 대나무, 란, 바위그림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정섭은 자신이 시들지 않은 란과 마디가 100개인 푸른 대나무와 부서지지 않을 바위, 그리고 변치 않을 사람들을 화폭에 담는다고 하였다.

- 출처: 학고재 간행 중국화화사 3천년 278-279쪽

 

- 정섭은 청아하고 탈속한 대나무를 그릴 수 있기까지 40여년이 필요했다고 술회하였다. 사람들은 정섭을 삼절(詩書畵)이라 불렀다.

- 참고: 경인문화사 간행 중국미술사전 228쪽

 


작품번호: 8004

작 가 : 장대천 (張大千) 1899-1983

작 품 : 산수화

크 기 : 67x121.5cm

 

장대천 - 산수화(67x121.5)

 

장대천 - 산수화(67x121.5) : 낙관

 

 

- 장대천은 사천성 내강(內江) 출신이다. 그는 서예가 이서청과 증희한테서 서화를 배워 과거의 명작들을 모사하기 시작하여, 1930년대에 이 분야의 대가로 유명해졌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그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등지로 떠났다가 1979년 마침내 대만 교외에 정착했다.

 

- 70세 쯤에는 전통발묵법을 기초로 하고 추상주의 기법을 원용하여 “넓은 부분에 구체적인 형태 없이 추상적으로 색을 엷게 펴 발라서 완성하였다” 이것은 중국전통회화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러한 기법으로 완성한 “여산전경”은 장대천의 마지막 걸작이다. (대만 대풍당 소장)

 

- 출처: 학고재 간행 중국회화사 3천년 347쪽, 350~352쪽

- 참고: 경인문화사 간행 중국미술사전 262쪽

 

 

 


작품번호: 8005

작 가 : 당인(唐寅) 1470-1523

작 품 : 청선도(聽蟬圖: 매미소리를 듣다)

크 기 : 52x103.5cm

 

당인 - 청선도(52x103.5)

 

당인 - 청선도(52x103.5) : 낙관

 

 

- 당인은 직업화가인 주신(周臣: 1472~1535)의 제자였지만 문인화가에 가깝다. 문징명과 동갑이였으며 동학(同學)이자 벗이였다. 당인은 1498년 남경 응천부 향시(鄕試)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회시(會試)를 치르기 위해 북경에 갔다가 시험부정사건에 연루되어 엄한 형벌을 받고 평생 동안 과거시험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인은 이 일로 큰 타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거의 폐인이 되었다.

 

- 당인의 인생은 비극적이었지만, 그의 예술작품은 천재성을 드러냈다. 당인의 산수화들은 구성과 경치와 형상에서 실재와 상당히 가깝다. 또한 시골풍경에 대한 화가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기도 했다.

 

- 당인은 명대(明代)에 몇 안 되는 뛰어난 인물화가 중 하나였다. 그는 미인들, 특히 기녀를 즐겨 그렸다. 그는 이런 작품들을 통해 세태를 풍자하고 도학자들의 위선을 비판하며 기녀들에 대한 연민을 표현했다.

 

-그는 꿈(夢), 환상(幻), 거품(泡), 그림자(影), 이슬(露), 번개(電)의 “여섯과 같다”는 뜻에서 자신의 號를 육여거사(六如居士)라 했다. 당인은 가난으로 병들어 54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 출처: 학고재 간행 중국회화사 3천년 222~224쪽

- 참고: 경인문화사 간행 중국미술사전 174쪽

 

 


작품번호: 8006

작 가 : 동서창(東瑞創)

작 품 : 화조

크 기 : 46.5x67.5cm

동서창 - 화조(46.5x67.5)

 

동서창 - 화조(46.5x67.5) : 낙관

 

 

- 청(淸) 末 작품으로 추정된다.

 

 


작품번호: 8007

작 가 : 작가의 호(號)가 묵신(墨神)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작 품 : 추일행려도(秋日行旅圖)

크 기 : 54.5x143.5cm

묵신 - 추일행려도(54.5x143.5)

 

묵신 - 추일행려도(54.5x143.5) : 낙관

 

 

- 가을철에 말을 타고 높은 산을 줄지어 넘고 있는 행상(行商)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밑그림 구도가 탄탄하고 피사체를 섬세하게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 화풍(畵風)이나 표현기법, 그리고 말을 타고 가는 행상들의 시대적인 배경을 유추한다면 명(明) 말기에서 청(淸)의 초기작품으로 추정된다.

 

 


작품번호: 8008

작 가 : 심주(沈周) 1427-1509

작 품 : 송풍고찰도(松風古刹圖)

크 기 : 44.5x100cm

 

심주 - 송풍고찰도(44.5x100)

 

심주 - 송풍고찰도(44.5x100) : 낙관

 

 

 

- 심주의 字는 계남(啓南), 號는 석전(石田)으로 강소 오현(吳縣) 사람이다.

그는 명대(明代)에 유명한 고관의 집안에 태어나 그의 자손 3대가 모두 고급 관리였고 대대로 명화가들 이었다. 그는 元代 4대가의 화풍을 계속하였고 산수, 인물, 화조, 금수와 각종 화법에 있어 明代 제 일인자라고 칭해졌다.

- 출처: 일지사 간행 김종태저서 중국화화사 228~230쪽

 

- 1476년 50세를 넘기면서 심주의 산수화는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고, 빠르고 대담한 필치와 간결하고 명료한 구성이 두드러졌다. 심주의 작품들은 사실을 자연주의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인화의 전통을 따라 화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했다.

- 출처: 학고재 간행 중국회화사 3천년 215~219쪽

 

- 심주와 더불어 남종문인화의 시조로 불러지고 있는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은 심주의 가장 출중한 제자로 심주가 죽고 나서 스승의 유업을 이어 받았다.

- 참고: 경인문화사 간행 중국미술사전 170쪽

 

 


작품번호: 8009

작 가 : 민화(民畵)

작 품 : 귀가도(歸家圖)

크 기 : 45.5x102.5cm

민화 - 귀가도(45.5x102.5)

 

 

- 초저녁 귀가를 서둘러 다리를 건너고 있는 어부의 모습과, 가족들이 어부의 귀가를 위해 집안에 불을 밝히고 어부를 기다리고 있는 정겨운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 용묵(用墨)이 세심하게 고르게 표현되어 전반적으로 어촌의 향수를 자아내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낚시대를 짊어지고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어쩌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물고기통이 보이지 않은 것일까...

 


작품번호: 8010

작 가 : 작가미상

작 품 : 부채산수

크 기 : 66x24cm

부채산수(66x24)

 

부채산수(66x24) : 낙관

 

부채산수(66x24) : 검사인

 

 

- 작품의 년대는 원(元) 혹은 송(宋)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전통적인 시골마을을 그린 작품이다. 화제를 해석하게 되면 보다 정확한 년대와 작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번호: 8011

작 가 : 화암(華嵒) 1682-1756

작 품 : 화조 4점

크 기 : 각15x22.5cm

 

화암 - 화조4점(각15x22.5)

 

화암 - 화조(15x22.5) 1

 

화암 - 화조(15x22.5) 2

 

화암 - 화조(15x22.5) 3

 

화암 - 화조(15x22.5) 4

 

- 화암은 복건성 상항 출신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고향에 있는 사당에 벽화를 그렸으며 지방 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 화암의 작품은 문인과 일반 도시 거주자와 상인들 모두의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죽기 한 해전에 그린 대표작 “천산적설도”는 길고 고된 길을 가는 상인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북방의 황무지를 정처 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외롭지만 한편으로는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감동을 준다.

- 출처: 학고재 간행 중국회화사 3천년 281쪽

- 참고: 경인문화사 간행 중국미술사전 224쪽

 


작품번호: 8012

작 가 : 증운(曾雲)

작 품 : 충화도(蟲花圖) 4점

크 기 : 각20x27cm

증운 - 충화도(각20x27)

 

증운 - 충화도(20x27) 1

 

증운 - 충화도(20x27) 2

 

증운 - 충화도(20x27) 3

 

 

증운 - 충화도(20x27) 4

 

- 작가를 정확히 확인하기가 어려워 작품만 전시했다. 작품수준은 작품번호 8011번 화암의 작품과 비슷한 것 같다.

 

 


작품번호: 8013

1. 작품이름 : Tibet Mandala Painting

2. 크 기 : 58.5x79.5cm

3. 년 령 : 16세기에 Tibet에서 제작된 불화

4. 특 징 : 좁은 화폭에 부처와 각종 불교문양을 형상화한 후, 영구보존을 위해 불화전체를 금(金)물로 입혔다.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 절반상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 절반하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 중앙원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