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매작품 : 북한유화 15점, 조선화 10점
2. 전시·판매기간 : 2023년 8월 7일 ~ 8월 20일
3. 구매문의 : 010-4432-4676
4. Email : rheo343@naver.com
작품번호 : 1003
작가 : 강익하
제목 : 금강산가을
크기 : 310x140
제작 : 2003
가격 :
* 화면 오른쪽 하단이 조명으로 인해 엷은 색깔로 나타나고 있으나 실제 그림은 깨끗하고 선명합니다.
강익하 (1939 - 2006) 약력
-1939년 1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이후 40년 넘게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으로 활동하면서 후대교육사업에 전심하였다.
-1964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혁명가의 어머니' 작품으로 3등상 수상
-1987년 구 소련 쑤리코브 미술대학 초빙교수
-198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소원' 작품으로 3등상 수상
-1991년 부교수
-1992년 공훈예술가
-1993년 예술학 학사학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유화분과위원
-교육자로서 그는 참고서 ‘소묘실기’(1985년 초판/1996년 재판)을 집필
-2006년 작고
* 강익하는 일단 대상을 잡으면 놓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완강성을 가지고 있으며 창작에서의 성과는 재능보다도 노력에 의하여 더욱 담보되고 있다. 강익하는 1974년부터 항일혁명투사들의 모습을 재건하기 위해 초상그림을 그렸다. 그 후 이러한 초상화는 조각창작사업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55~657쪽 인용)
* 출품작 ‘금강산가을’은 화려한 색채배합으로 금강산의 가을풍경을 화려하게 조형화한 우수한 작품으로 강익하 작품 중 보기 드문 300호가 넘은 대형풍경화 작품입니다.
작품번호 : 1006
작가 : 강정호
제목 : 호수가백조
크기 : 89x58
제작 : 2007
가격 :
강정호 (1950 - ) 약력
-1950년 원산시에서 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부 졸업
-1968년 이후 백호미술창작사에서 실장으로 활동중
-197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행복'으로 1등상 수상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76쪽은 '행복' 작품을 1970년대 일반주제화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창작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 시리아, 이집트 등 여러 나라에서 미술대표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해외에서 잘 알려진 화가이다.
* 실력가형인 강정호는 풍경화조분야에서 자기의 독자적인 경지를 가지고 있다. 그의 풍경화 그림은 정리된 필치, 정서적인 색채, 확신성있는 묘사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76-777쪽 참조)
작품번호 : 1012
작가 : 강훈영
제목 : 고향집염소
크기 : 73x55
제작 : 미상
가격 :
강훈영 (1935- ) 약력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출생
-1954년 평양미술대학입학/1960년 졸업
-1960년-1986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
-1986년 이후 조선화학부강좌장,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설학부강좌장
-1964년 “재봉대원”으로 국가미술전람회 2등상 수상
-1980년 공훈예술가
-1987년에 부교수학직 수여
-1997년에 인민예술가
* 대표작 유화 '예술인전신(124x96cm)'은 3년간의 고심 끝에 1996년에 완성된 세화적 기법의 그림으로 묘사의 공백도 없이 치밀한 방법으로 제시된 모든 요소들을 형태와 부분, 색과 질감까지도 높은 묘사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과분한 치하를 받은 작품이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01쪽 인용)
작품번호 : 1035
작가 : 김린권
제목 : 동해바다
크기 : 86x59
제작 : 2000
가격 :
김린권 (1925 - 2004) 약력
-1925년 함경남도 인흥군에서 출생
-1938년부터 10년간 흥남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학교에 입학
-1951년 구소련 레닌그라드 레핀미술대학에서 6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문화선전성 지도원
-1964년-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영화 및 미술분과 위원장
-1965년 정종여와 함께 조선미술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1978년 공훈예술가
-1983년-1994년 문학예술작품 심사위원
-2004년 작고할 때까지 송화미술원 서기장으로 있었다.
-2004년 작고
작품번호 : 1039
작가 : 김만형
제목 : 가을들판
크기 : 61x28
제작 : 미상
가격 :
김만형 (1916-1984) 약력
- 경기도 개성시에서 출생
- 1929년 경성 제1 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4년 일본 제국미술학교에 입학.
- 선전(鮮展) 16회(1937년)~22회까지 6점이 입선, 23회는 “언덕”으로 특선
- 1939년 졸업 후 집안이 파산하여 화신백화점/광산에서 일을 하였다.
- 1946년 남조선미술동맹 서기장
- 1949년 제 1회 국전 추천작가
- 1952년 조선미술가동맹 평안북도 지부장
- 1958년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 지도원
- 1984년 작고
* 김만형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비교적 폭이 넓고 정서가 깊은 풍경화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그는 사상적으로 좌익을 신봉한 화가로서 풍경화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 웅장한 느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25-328쪽 인용)
작품번호 : 1048
작가 : 김상훈
제목 : 가을계곡
크기 : 76x53
제작 : 2001
가격 :
김상훈 (1933 - ) 약력
-1933년 3월 평안북도 동창군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졸업 후 교원, 강좌장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여성영웅광부”로 2등상 수상
-1963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생의 노래”로 2등상 수상
-196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긍지”로 2등상 수상
-1982년 부교수
-1989년 학사학위
-1991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13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1996년 중국 연변에서 40여점을 가지고 미술작품전시회를 가졌다
-1997년 인민예술가
작품번호 : 1077
작가 : 김종섭
제목 : 고향집
크기 : 71x52
제작 : 2001
가격 :
김종섭 (1937- ) 약력
-평안북도 정주시에서 출생
-1955년 평양미술대학 예비과에 입학, 1961년에 유화과를 졸업.
-1966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황해북도 위원회 미술가, 황해북도 위원장으로 20년 이상을 황해북도의 미술을 책임진 지도일군으로 성과적으로 훌륭히 수행한 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196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불굴의 투사 김금순동지'로 3등상을 수상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그의 유화작품들은 깊은 창작적 사색으로 이루어진 조형적 형상과 표현언어들의 활용으로하여 폭과 깊이가 보장되어 있고, 진지하게 파고 든 묘사력으로 비교적 완성도가 높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23-624쪽 인용)
작품번호 : 1088
작가 : 김철헌
제목 : 기다리는 안해
크기 : 114x79
제작 : 2007
가격 :
김철헌 (1937 - ) 약력
-1937년 량강도 보천군에서 출생
-1955~1958년 원산농업대학 졸업
-1958~1960년 평양연극영화대학 미술학부 졸업
-1960~1962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 졸업
-1962년 이후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책임미술가
-1964년 예술영화 '정방공', '인민교원', '이 세상 끝까지' 영화미술창작
-196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영화미술 '정방공'(1등), '고향길'(1등) 수상
-1979년 공훈예술가
-1979년 다부작 예술영화 '이름없는 영웅들'(20부작) 영화미술을 창작했다.
* 김철헌은 오랜 동안 영화미술을 하면서 현실적으로 생동하는 진실된 작품들을 창작해왔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번호 : 1090
작가 : 김형철
제목 : 소백수골
크기 : 44x55
제작 : 2000
가격 :
김형철 (1931 - 2017) 약력
-1931년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출생
-1949년 평양미술대학 입학, 1955년 졸업
-1955~1983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 대학박사원 원장, 예술학학사
-1961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평론분과 위원
-1988년 공훈예술가
-1989년 교수학직수여,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예술학부문 심의위원
-1989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2017년 작고
* 1963년부터 그가 집필한 '소묘' 교과서는 1997년 까지 무려 6차례에 걸쳐 개작되어 출판된 것으로 미술대학, 사범대학, 교원대학, 예술학원을 비롯한 미술교육부문의 유일한 교과서가 되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23쪽 인용)
작품번호 : 1098
작가 : 라병주
제목 : 청수동좌리
크기 : 71x49
제작 : 1999
가격 :
라병주 (1942- ) 약력
- 1942년 평양시 모란봉구역에서 출생
- 1972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 유화과졸업
- 1973년 이후 만수대창작사 창작가
- 1987년 이후 목란창작사 창작가, 문예총 중앙위원회 미술가
- 1988년 러시아미술전시회, 1989년 불가리아 국제미술전람회,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서 진행된 국제미술전시회에서 우수한 미술가로 평가받아왔다.
* 대표작으로 조선화 '은하리쳐녀들', 유화 '청산리 이른 새벽', '포도', '리명수에서' 등이 있으며, 30여점의 국보작품을 창작하여 보존되어 있다.
* 명화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작품번호 : 1107
작가 : 류정봉
제목 : 구룡폭포가을
크기 : 58x72
제작 : 1988
가격 :
류정봉 (1942 - ) 약력
-1942년 2월 평양시에서 출생
-1967년 평양미술대학졸업 후 모교에서 유화강좌 교원으로 활동
-평양미술대학 박사원(4년)졸업 후 구 소련에서 미술활동을 하였다.
-1974년 아프리카 잠비아 미술고문으로 활동했다.
-1991년 공훈예술가
-그는 '유화의 채색원리'에 대한 론문을 집필하여 예술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 그의 처는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의 주인공역을 한 공훈배우 림춘영이며, 그의 조카 김동환은 로력영웅이자 인민예술가이다.
* 1995년에 제작된 '금강산 상팔담의 달밤'은 진지한 창작태도를 가지고 색채의 조형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화가의 탐구정신을 충분히 엿보게 하며 그의 창작적 개성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99-700쪽 인용)
작품번호 : 1113
작가 : 리근택
제목 : 천지비루봉
크기 : 103x68
제작 : 1997
가격 :
리근택 (1949 - 2011) 약력
-1949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80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 졸업
-197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삼지연의 달밤'으로 1등상 수상
-1980년 이후 백호창작사에서 창작활동
-198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전투원의 훈련장'으로 1등상 수상
-1990년 이후 4년간 이집트에서 '크레오파트라초상' 등 대형전경화를 제작
-1994년 공훈예술가
-2002년 인민예술가
-2011년 작고
* 리근택의 대표작 중에는 풍경화가 많다. 그는 창작에서 유화의 재료적 특성을 파악하고, 색채형상의 깊이를 보장하기위해 힘쓰고 있다. 그의 그림은 구수한 것이 특징이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68-769쪽 인용)
* 리근택의 풍경화 작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특정한 풍경이나 지역을 압축해서 피사체를 꽉 차게 화면에 배열하고 있다.
둘째는 사람을 풍경화면에 등장시켜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작가의 의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셋째는 화면을 입체적인 구도로 구성하여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웅장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작품번호 : 1136
작가 : 리영호
제목 : 단풍든 대동문
크기 : 72x50
제작 : 2000
가격 :
리영호 (1948 - ) 약력
-1948년 평안남도 순천시에서 출생
-1976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 유학과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설학부졸업
-1977년 이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82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
-1983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작 ‘동무는....’ 작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1984년 ‘파철’, 1985년 ‘소원이 풀리는 날’, 1986년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명화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작품번호 : 1159
작가 : 리종원
제목 : 2월의 소백수
크기 : 102x75
제작 : 1989
가격 :
리종원 (1934 - ) 약력
-1934년 황해북도 연탄군에서 출생
-1963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1970-1988년 만수대창작사 벽화창작단 단장
-평양지하철 1, 2, 3계단 벽화창작사업을 지도한 공로로 공훈예술가 수여받음
-인민문화궁전, 김일성경기장, 4.25 문화회관, 만수대예술극장 등 벽화작품들을 창작조직과 형상지도를 맡아 훌륭히 수행했다.
-1974-1988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현재 평양미술대학 강좌장, 창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리종원의 벽화는 전례없는 규모와 형상의 밀도로 일찍이 보지 못한 굴지의 대형벽화를 창조하여 주체미술의 찬란한 전성기를 펼치는데 공헌하였으며,현대 벽화예술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82쪽 인용)
작품번호 : 1196
작가 : 박래천
제목 : 접선봉
크기 : 256x120
제작 : 2002
가격 :
박래천 (1936 - 2017) 약력
-1936년 11월 전라북도 금산군에서 출생하여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고급중학교 졸업
-1963년 평양미술대학졸업 후 40여년간 출판화 학부교원, 강좌장으로 계속활동하였다.
-196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모든 지역 모든 전선'으로 입상
-1985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0만정보의 날바다'로 입상
-198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기적소리'로 입상(대표작품)
-1991년 공훈예술가
-1994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탄광에 더 많은 갱목을'로 입상
-1998년 인민예술가
-2017년 작고
* 박래천은 몰골화 기법을 유화에 적용하여 자기만의 새로운 화법으로 독창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북한 최고의 명화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 35년에 걸치는 후대 교육사업을 통하여 재능 있는 많은 선전화가들을 키워내는데 기여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17쪽 인용)
작품번호 : 2006
작가 : 김기만
제목 : 새우
크기 : 46x34
제작 : 1996
가격 :
김기만 (1929-2004) 약력
-1929년 서울시 종로구에서 출생
-4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여 부모를 대신한 맏형 운보 김기창의 슬하에서 살았다.
-1949년 경기공립고등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
-6.25전쟁시기 의용군에 입대하여 1955년까지 군사복무
-1956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에 입학
-1960-1965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5-1982년 조선민속박물관 미술부장
-1983-사망할 때까지 철도미술창작사 실장 등 미술창작기관에서 활동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2004년 작고
* 2000년 12월 남북이산가족상봉시 서울을 방문하여 맏형 운보 김기창의 병석을 방문하여 서로 작품을 맞바꾸었다고 한다.
작품번호 : 2020
작가 : 김상직
제목 : 진달래와 소나무
크기 : 100x54
제작 : 1998
가격 :
김상직 (1934 - 작고) 약력
-1934년 4월 함경북도 라진군에서 출생
-로동을 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20대 때 유화 12점을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
-1961년 27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벽화 수업을 받았고, 대학시절 리석호로부터 다년간 개별지도를 받았으며 1965년에 졸업
-대학졸업 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조선미술가동맹, 평양미술대학교원과 강좌장,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생활과 후비육성사업을 하였다.
-1977년 벽화 '산전막에 남긴 사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수상
-1996년 새로 발족한 송화미술원 원장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공훈예술가를 수여받았다.
* 벽화창작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활동은 조선화창작으로 그의 전성기를 보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69쪽 인용)
작품번호 : 2023
작가 : 김성근
제목 : 구룡폭포
크기 : 67x101
제작 : 1990
가격 :
김성근 (1945 - ) 약력
-1945년 7월 평안북도 천마군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받고 기계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했으며 군복무를 거쳐 1971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72-1975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1986년까지 그는 명확한 전문없이 자연을 이것 저것 제기 되는대로 그리다가
-1987년(42세)부터 '총석정의 파도'를 그려 파도그림을 주동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파도의 전문가로 '김파도'라고까지 불리우게 되었다.
-1990년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수채화경연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91년 공훈예술가
-1993년 그의 대표작 '해금강의 파도(18mx8m)'를 제작했다.
-1994년 김정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대걸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8년 인민예술가
* 김성근은 바다를 형상화하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며 변하는 바다, 격랑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파도, 폭풍을 일으키며 광란하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가는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32쪽 인용)
작품번호 : 2027
작가 : 김성호
제목 : 보통강겨울
크기 : 96x50
제작 : 2000
가격 :
김성호 (1944- ) 약력
-1944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69-1973년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유화를 그렸고, 그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조선화를 그렸다.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여점이 입상(금메달과 1~3등) 되었다.
-1989년에 공훈예술가
-1996년에 인민예술가
* 김성호는 풍경화에서 추구한 정서는 매우 감성적이다. 그는 주로 아침과 흐린 날 등의 시간적 느낌에서 오는 독특한 정서를 통하여 자연의 미를 부각시키고, 격이 있고 운치가 있는 고상한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또한 그의 풍경화들에는 짙은 향토적 정서가 깔려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21쪽 인용)
작품번호 : 2055
작가 : 리률선
제목 : 금강산여름
크기 : 175x74
제작 : 1999
가격 :
리률선 (1933 - ) 약력
-1933년 황해북도 은천군에서 출생
-1949년 평양체신전문학교 졸업 후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중상을 입었다.
-1952년 평양미술대학입학, 1957년 졸업
-1961년 '간석지개간'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8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
-1980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1988년 '진펄길을 헤치고'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57~1998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 부교수, 조선화학부장
-196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 중앙위원, 집행위원
-미술작품심의위원회 심의위원, 국가학위학직 심의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조선화법(1983년)', '조선화화법기초(1984년)'가 있다.
작품번호 : 2075
작가 : 리처흡
제목 : 칠보산 개심사
크기 : 117x65
제작 : 1985
가격 :
리처흡 약력
-북한이 발행한 1989년도 '조선미술년감'(평양문예출판사) 340~342쪽에 게재된 '혁명적인 현실이 요구하는 미술작품을 창작하는데서 이룩한 빛나는 성과'의 논문저자가 '만수대창작사 사장 리처흡' 이름으로 게재되어 있다.
-리처흡은 문부성 부상을 지냈으며,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 리처흡은 1989년에는 만수대창작사 사장으로 재직한 것으로 상기 논문으로 확인되고 있다. 2중 로력영웅 인민예술가 정영만이 1989년부터 만수대창작사 창작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리처흡과 함께 사장과 부사장으로 근무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작품번호 : 2081
작가 : 문화춘
제목 : 가을계곡
크기 : 79x51
제작 : 1999
가격 :
문화춘 (1938 - ) 약력
-193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출생하여 해방후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문하연은 평양음악대학 초대 학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한 집안이였다.
-문화춘은 17세인 1954년에 평양미술대학 예비과(2년), 본과(4년)을 수료하고, 1960년에 졸업하여 모교의 교원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이후 철도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창작실장
-1971년 그의 대표작 '내금강의 아침(90x175cm)'으로 김정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1987년 공훈예술가
-1989년 1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작품번호 : 2096
작가 : 방학주
제목 : 장고춤
크기 : 52x119
제작 : 1996
가격 :
방학주 (1943 - ) 약력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56-1960 함경북도 도미술가동맹 야간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68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를 졸업
-1968-1987년까지 함경북도 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였고,
-1987년 이후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공훈예술가
-1995년 인민예술가
*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수법으로 그림을 수예품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형상화 하고, 특히 인물화와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그의 작품 '참대숲'은 남한/해외에서 인기가 높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710-711쪽 참조)
작품번호 : 2108
작가 : 선우영
제목 : 산촌의 아침
크기 : 138x70
제작 : 1999
가격 :
선우영 (1946-2009) 약력
-1946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 졸업
-1969-1972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1972-2009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2009년에 사망했다.
-198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장군님의 뜻을 안고'로 1등상 수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특징은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의 묘사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의 생략과 같은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라고 선우영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8쪽 인용)
* 그가 창작한 ‘금강산석가봉’과 ‘범’은 세화기법으로 그린 조선화중에서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7쪽 인용)
작품번호 : 2234
작가 : 정창모
제목 : 분계선의 옛집터
크기 : 62x113
제작 : 1999
가격 :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 정창모는 풍경화와 화조만을 그린 작가이다. 인물화나 동물화 등 다양하고 폭이 넓은 영역을 형상화했던 다재다능한 작가는 아니다. 북한 발행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서 언급한 대로 정창모의 작품 수가 '수천 점'에 이른다고 한다면, 작품의 품질과 희소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우려해서 편람 533쪽 하단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정창모의 다작을 옹호하고 있다.
'정창모는 자기의 창작을 인민에 대한 복무로 접근시켰다. 항간에 많이 류포되고 있는 정창모의 그림은 한 점이라도 더 인민들에게 주자는 그의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창작 태도의 결과이다.’
그렇다면, 정창모의 작품 남발의 동기가 외화 획득이 아니라 인민들에게 한 점씩 배포하는 것이었다면, 차라리 정창모 그림을 프린트해서 모든 북한 주민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소장가 의견)
* 본 '분계선의 옛집터'는 정창모의 학사 논문집 '민족의 자랑 조선화'에 게재된 정창모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상기 논문집은 2000년 4월 30일에 평양 '2.16 예술교육출판사'가 발행했으며, 논문 심사위원으로 김재홍 박사, 성두원 박사, 그리고 인민예술가 김성민, 3명으로 적시하고 있다.
논문집에 게재된 정창모의 작품 사진은 '분계선의 옛집터'를 포함한 37점이 게재되어 있으며, 최초 본 작품 제작연도는 1982년으로 되어 있다. 이를 1997년에 1차로 개작했으며, 다시 1999년 2차로 개작한 작품을 본 소장가가 소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본 소장가가 이 작품을 구매한 동기는 정창모 본인이 선정한 37점을 학사 논문집에 수록한 것도 있지만, 정창모 작품 중에서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골집 마당 우물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꽃나무가 정창모가 원했던 주제였다면, 부서진 항아리가 의미하는 전쟁의 상흔이 인간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기를 바랐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소장가 잡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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