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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전시 판매전

(종료) 2023년 제23회 전시판매전 (1/1-1/15)

1. 판매작품 : 한국화 12점

2. 전시·판매기간 : 2023년 1월 1일 ~ 1월 15일

3. 구매문의 : 010-4432-4676

4. Email : rheo343@naver.com

 

 

 

 


작품번호 : 3006 (표구)

작가 : 춘곡(春谷) 고희동

제목 : 산수가리개 2점

크기 : 각각 36x124

제작 : 미상

가격 : 

고희동- 산수가리개 2점(113x66)

 

고희동- 산수가리개 2점(113x66) : 낙관

 

춘곡(春谷) 고희동 (1886-1965) 약력​

-1886년 3월 서울에서 출생

-1905~1911 : 궁내부주사 예식관(통역관)

-1908~1915 : 도쿄미술학교 졸업

-1915~1927 : 휘문, 보성, 중동고등보통학교 교사

-1918~1936 : 한국 최초 근대미술단체인 서화협회 창립총무와 회장

-1946 : 조선미술협회 회장

-1949~1959년 :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심사위원장

-1953년 이후 대한미술협회 회장으로 사망할 때까지 국전을 주도했다.

-1954년 예술원 종신회원, 초대회장

-1965년 작고

 

* 춘곡은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수식어를 가진 화가이자 미술행정가로 대한민국 미술계의 역사 그 자체로 회자되고 있다.

 

 

 


작품번호 : 3015

작가 :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제목 : 농악대(판화)

크기 : 67x101

제작 : 미상

가격 : 

김기창 - 농악대(67x101)

 

김기창 - 농악대(67x101) : 낙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약력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났다. 7세에 청각을 잃고 언어장애를 얻었다.

-1930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이묵헌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31~1936년 :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6년 연속 입선

-1937~1940년 : 선전에서 4년 연속 특선

-1941~1943년 : 선전에서 3년 연속 추천작가

-1945년 광복과 함께 아호를 운포(雲圃)에서 운보(雲甫)라는 아호를 쓰기 시작

-1946년 우향(雨鄕) 박래현과 결혼 후, 총 17회에 걸쳐 부부 전시회를 가졌다.

-1955년부터 홍익대학교 시간강사, 1962년부터 수도여자사범대학 미술교육과 회화과장

-1970~1980년 :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라는 김기창의 독창적인 작업이 탄생한 시기

-1990~2001년 : 단색조의 추상화인 “점과 선” 연작을 제작하였다.

-2001년 1월 23일 8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작품번호 : 3033 (표구)

작가 : 이당(以堂) 김은호

제목 : 노안도

크기 : 45x37

제작 : 1969

가격 : 

김은호 - 노안도(45x37)
김은호 - 노안도(45x37) : 낙관

 

이당(以堂) 김은호 (1982-1972) 약력

-1912~1917 : 서화미술회 화과(3)/서과(2) 졸업

-스승인 심전 안중식으로부터 이당(以堂)이라는 호를 받았다.

-1918 : 서화협회 창립 정회원으로 참여

-1922 : 제 1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 4등상을 시작으로 제3회 3등상, 6회 특선, 7회 특선, 8회 입선 후 더 이상 출품하지 안했다.

-1949 : 1회 국전에 추천작가로, 4회 부터는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0년대 : 채색산수화로 새로운 화풍의 변화를,

-1970년대 : 보다 강렬한 채색의 현대적 풍경화로 변화시켰다.

-1962 : 문화훈장 대통령상을 수여받고, 196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6 민족문화상 본상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

-1971 : 서울신문사 주최 동양화가 6대가에 선정되어 출품했다.

-1972년 작고

 


작품번호 : 3043 (표구)

작가 : 추사(秋史) 김정희

제목 : 서예

크기 : 32x123

제작 : 미상

가격 : 

김정희 - 서예(32x123) 그리고 낙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약력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 호는 추사, 완당(阮堂),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노(果老) 등이 있다.

-조선후기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추사체를 완성한 문신이다.

-조선조의 훈척가문(勳戚家門)의 하나인 경주(慶州) 김문(金門)에서 병조판서 김노경의 맏아들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안팎이 왕의 종친과 외척으로 그가 문과에 급제하자 조정에서 축하를 할 정도로 권세가 있었다.

-1819년(순조 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예조참의, 병조참판, 성균관 대사성 등을 지냈다.

-생부 김노경의 옥사 때에 고금도 유배를 필두로,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에 유배, 1851년 친구인 영의정 권돈인의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북도 북청에 2년 동안 유배되었다. 그는 오랜 유배생활을 마친 후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學藝)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서도(書道), 시도(詩道), 화도(畵道), 그리고 전각(篆刻) 등에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조선 후기를 풍미한 대학자요, 예술가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작품번호 : 3054/3055 (표구)

작가 : 일주(一洲) 김진우

제목 : 사군자 2점 (매란/국죽)

크기 : 각각 133x33

제작 : 미상

가격 : 

김진우 - 사군자/매란(133x33)
김진우 - 사군자/국죽(133x33)
김진우 - 사군자(133x33) : 낙관

 

일주(一洲) 김진우 (1883-1950) 약력

-1883년 강원도 영월에서 출생. 호는 금강산인(金剛山人)이라고도 한다.

-1918년 : 서화연구회에서 그림수업을 받고 졸업

-1919년 :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강원도대표 의원

-1921년 :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3년 징역형을 겪었다.

-1925년 : 제4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참여하여 연속 4회 입선했다.

-1950년 12월 한국전쟁 시기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일주 김진우는 사군자 중에서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유작으로는 묵죽도(개인소장), 죽석도(간송미술관소장)가 있다.

 


작품번호 : 3067 (표구)

작가 : 유산(酉山) 민경갑

제목 : 정물

크기 : 26x21

제작 : 1999년

가격 : 

민경갑 - 정물(26x21)
민경갑 - 정물(26x21) : 낙관

 

유산(酉山) 민경갑 (1933-2019) 약력

-1933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출생, 대전고 졸업

-1956~1963 : 국전 제5회~13회까지 특선 4회

-1957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72~1979 : 국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1998 : 원광대학교 미술대학교수 정년퇴임

-2000 :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2002 :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04 : 예술원상

-2010 : 대한민국 미술인상 본상

-단국대학교 예술대 석좌교수역임

-2019년 작고

 


작품번호 : 3071

작가 : 지홍(智弘) 박봉수

제목 : 도봉산설월

크기 : 130x71

제작 : 1978

가격 : 

박봉수 - 도봉산설월(130x71)
박봉수 - 도봉산설월(130x71) : 낙관
박봉수 - 도봉산설월(130x71) : 한국고미술협회 감정서

 

지홍(智弘) 박봉수 (1916-1991) 약력

-1916년 경주에서 출생

-1930~1931년 : 일본에서 수묵화와 유화를 공부

-1935~1936년 : 중국 북경미술학원에서 그림 수학

-1939~1943년 :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제18회, 21회, 22회 입선

-1953~1958년 : 경주 근화여자중학교 미술교사

-1959~1981년 : 독일, 미국, 스위스, 이태리, 일본, 로마 등지에서 개인전, 초대전, 출품전에 20여 차례 출품하여 참여했다.

-1983년 :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1988년 운영위원

-1991년 작고

 

*중국파 3인 : 지홍 박봉수, 청강 김영기, 금추 이남호, 3인을 말한다.

구한말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서화(書畵)를 배워 화단에 등장한 화가들 중에 대표적인 화가로 위 3인을 중국파 3인 화가로 지칭한다. 이들은 국전에 참여하지 않고 재야에서 활동했다.


작품번호 : 3075 (표구)

작가 : 심향(深香) 박승무

제목 : 설경산수

크기 : 36x25

제작 : 미상

가격 : 

박승무 - 설경산수(36x25)
박승무 - 설경산수(36x25) :    낙관

 

 

심향(深香) 박승무 (1893-1980) 약력

-1893년 서울에서 승지 박경양의 장남으로 출생

-1913~1916 : 서화미술회 화과 졸업.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지도를 받음

-1917~1919 : 중국 상해에서 동양의 전통화법을 공부함

-1923~1931 :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입선 8회, 특선 1회

-1949~1954 : 국전 제1/3회 추천작가

-1955~1960 : 국전 초대작가

-1971년 서울신문사 주최 “동양화6대가전”에 선정되어 4점을 출품

-1980년 작고

 

-심향 박승무는 제자 양성이나 화단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거부한 고독한 재야 화가였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탈속적인 기질과 자유롭고 욕심 없는 문인정신은 작품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특히 그가 그린 설경의 세계는 근대 한국화단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작품번호 : 3087

작가 :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제목 : 도자기산수

크기 : 지름 38cm

제작 : 1966

가격 : 

변관식 - 도자기산수(지름38cm)
변관식 - 도자기산수(지름38cm) : 뒷면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1899-1976) 약력

- 1899년 황해도 옹진에서 출생

- 1910년 12세때 외조부 소림(小琳) 조석진과 함께 서울에 옴

- 1917년 서화미술회에 연구원으로 그림을 배우며 당대 서화가들과 교류

- 1922-1923년 선전1회와 2회에 입선

- 1924-1925년 선전 3회에 “추경”으로 4등상. 4회에 특선

- 1925-1928년 동경미술학교 청강생

- 1937년 금강산에 입산하여 낭인생활을 시작. 이후 소정 특유의 준법(皴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1949년 국전 1회와 1953년 2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

- 1957년 국전 심사과정의 비리를 폭로한 이후 국전에 불참했다.

-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 수여받음

- 1971년 서울신문사주최 “동양화6대가전”에 출품

- 1974년 현대화랑에서 개인전

- 1975년 동아일보사주최 회고전 개최

- 1976년 향년 78세로 별세

- 1969년 예총화랑에서 “고희기념전”이 개최되기 前까지 소정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다. 1971년 “동양화6대가전”과 1974년 “개인전”, 그리고 1975년 “회고전”을 통해서야 비로소 화랑가와 일반대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소정의 천재적이고 개성적인 작가로써의 세속적인 보답을 받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생애를 끝낸 후였다.

 


작품번호 : 3104 - 3107

작가 :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제목 : 사군자 4점

크기 : 각각 35x92

제작 : 미상

가격 : 

안중식 - 사군자 4점(각각35x92)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 약력

-1861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서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세 쯤 오원 장승업을 만나 화가로서의 본격적인 틀을 갖추게 된다.

-장승업에게 그림을 배우던 안중식은 1881년 20세 때 중국 천진 기기제조처 연구생으로 조석진과 함께 중국에 파견된 이후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서화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안중식이 근대미술계에서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것은 1911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기관인 “서화미술회”를 만든 것이었다.

-1918년 6월에는 해강 김규진의 “서화연구회”와 합쳐 “서화협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지낸다.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나자 일본경찰에 잡혀가 심한 고초로 인해 병이 악화되어 11 2일에 세상을 떠났다.

 

-안중식의 회화세계는 근대적 개념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모습보다는 주로 전통적이고 보수적 경향을 따르면서 북종화적인 채색위주의 청록산수를 많이 그렸다.

 


작품번호 : 3179 (표구)

작가 : 소림(小琳) 조석진

제목 : 춘경산수

크기 : 35x135

제작 : 미상

가격 : 

조석진 - 춘경산수(35x135)와 낙관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 (1853-1920) 약력

- 1853년 황해도 옹진에서 출생.

- 조선말의 도화서의 궁중화원(畵員)으로 영춘군수를 지냈고, 고종의 어진을 그려 정삼품(正三品)에 올랐다.

- 심전 안중식과 더불어 오원 장승업의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 1911년 서화미술원을 설립하자 심전과 더불어 교수로 있으면서

이용우, 오일영, 김은호, 이상범, 노수현, 최우석, 박승무, 변관식 등 한국근대화 전통회화를 주도하게 되는 화가들을 많이 배출시켰다.

- 조선화단의 최후의 대가로 특히 산수화와 어해화에 능하였다.

- 대표작으로는 헤엄치는 물고기떼를 그린 군어유영도(群魚游泳圖)와 운산서식도(雲山棲息圖)가 있다.

 

 


작품번호 : 3212 (표구)

작가 : 우석(友石) 황종하

제목 : 호도(虎圖)

크기 : 131x50

제작 : 미상

가격 : 

황종하 - 호도(131x50)
황종하 - 호도(131x50) : 낙관

 

 

우석(友石) 황종하 (1887-1952) 약력

-개성출신으로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호랑이 그림에 뛰어났다.

-황종하, 황성하, 황경하, 황용하 등 형제 4명이 모두 그림에 뛰어나 “황씨 4형제”라고 불렸다.

-어려서 형제들과 함께 10여 년 동안 사숙을 통해 한학과 고전을 배웠고, 그림을 스스로 익히는 한편 한시, 양금, 활쏘기를 즐겼다.

-1922년 : 개성에서 “송도서화연구회”를 열고 서화교육을 시켰다.

-1924년 : 전북 군산으로 내려와 송도서화연구회를 군산으로 옮기고 서화연구소로 명칭을 바꿔서 운영하였다.

-1928~1935년 : 통영, 진주, 밀양, 중국, 만주 등지를 유람하면서 스케치기행을 하였다.

-1936년 : 서울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호랑이 그림에 몰두했으며,

-1943년 : 황해도 연안으로 이주하여 6년간 거주하고,

-1950년 :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동생 황성하와 함께 서울에 정착했다.

-1952년 작고

 

-호랑이 그림을 잘 그려서 “황호랑이”, “호랑이그림 일인자”라고 불렸고, 중국 역대 유명화가를 사숙하여 형제들 중 가장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