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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전시 판매전/북한 조선화 정기 출품전

4회 북한 조선화 출품작

작품 문의:

010 4432 4676

rheo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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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451

작 가: 김성근

제 목: 바다파도

크 기: 106x57

제 작: 1999년​

김성근 - 바다파도(106x57)

 

김성근 - 바다파도(106x57) : 낙관

 

 

김성근 (1945 - ) 약력

 

-1945년 7월 평안북도 천마군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받고 기계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했으며 군복무를 거쳐 1971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72-1975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1986년까지 그는 명확한 전문없이 자연을 이것 저것 제기 되는대로 그리다가

-1987년(42세)부터 “총석정의 파도”를 그려 파도그림을 주동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파도의 전문가로 “김파도”라고까지 불리우게 되었다.

-1990년 이딸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수채화경연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91년 공훈예술가, 1998년 인민예술가

-1993년 그의 대표작 “해금강의 파도”(18mx8m)를 제작했다.

-1994년 김정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대걸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성근은 바다를 형상화하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며 변하는 바다, 격랑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파도, 폭풍을 일으키며 광란하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가는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32쪽 인용)


작품번호: 452

작 가: 김성호

제 목: 고향여름

크 기: 96x55

제 작: 2000년​

김성호 - 고향여름(96x55)
김성호 - 고향여름(96x55) : 낙관

 

 

김성호 (1944- ) 약력

-1944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69-1973년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유화를 그렸고, 그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조선화를 그렸다.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여점이 입상(금메달과 1~3등) 되었다.

-1989년에 공훈예술가, 1996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김성호는 풍경화에서 추구한 정서는 매우 감성적이다. 그는 주로 아침과 흐린 날 등의 시간적 느낌에서 오는 독특한 정서를 통하여 자연의 미를 부각시키고 격이 있고 운치가 있는 고상한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그의 풍경화들에는 짙은 향토적 정서가 깔려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21쪽 인용)


작품번호: 453

작 가: 리률선

제 목: 여름

크 기: 175x74

제 작: 1998

리률선 - 여름(175x74)
리률선 - 여름(175x74) : 낙관

 

리률선 (1933 - ) 약력

 

-1933년 황해북도 은천군에서 출생

-1949년 평양체신전문학교 졸업 후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중상을 입었다.

-1952년 평양미술대학입학, 1957년 졸업

-1961년 "간석지개간"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8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

-1980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1988년 "진펄길을 헤치고"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57~1998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 부교수, 조선화학부장

-196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 중앙위원, 집행위원으로 활동

-미술작품심의위원회 심의위원, 국가학위학직 심의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조선화법”(1983년), “조선화화법기초”(1984년)이 있다.

 


작품번호: 454

작 가: 문화춘

제 목: 가을계곡

크 기: 79x51

제 작: 1999년​

문화춘 - 가을계곡(79x51)
문화춘 - 가을계곡(79x51) : 낙관

 

 

문화춘 (1938 - ) 약력

 

-193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출생하여 해방후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문하연은 평양음악대학 초대 학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한 집안이였다.

-문화춘은 17세인 1954년에 평양미술대학 예비과(2년), 본과(4년)을 수료하고,

-1960년에 졸업하여 모교의 교원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이후 철도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창작실장

-1971년 그의 대표작 “내금강의 아침(90x175cm)"으로 김정일로부터 표창장.

-1987년 공훈예술가

-1989년 1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작품번호: 455

작 가: 방인수

제 목: 남강기슭 나의집

크 기: 96x59

제 작: 1998년​

방인수 - 남강기슭 나의집(96x59)
방인수 - 남강기슭 나의집(96x59) : 낙관

 

 

방인수 (1952 - ) 약력

-1952년 평양시에서 출생

-1974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5년 철도미술창작가,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현재 송화미술원에서 활동

-국가미술전람회에 여러 점을 입선/입상하였으며, 주로 국내보다 대외미술전시회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호평을 받은 작가로 광주 비엔날레에도 출품했다.

-1999년 중국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1999년 미국 워싱톤에서 30여점을 가지고 개인전시회를 가졌다.

-“명화가”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작품번호: 456

작 가: 선우영

제 목: 금강산 석가봉

크 기: 130x65

제 작: 2000년​

선우영 - 금강산 석가봉(130x65)
선우영 - 금강산 석가봉(130x65) : 낙관

 

선우영 (1946-2009) 약력

 

-1946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 졸업

-1969-1972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1972-2009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2009년에 사망했다.

-198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장군님의 뜻을 안고”로 1등상 수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특징은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의 묘사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의 생략과 같은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고 선우영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8쪽 인용)

-그가 창작한 “금강산석가봉”과 “범”은 세화기법으로 그린 조선화중에서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번호: 457

작 가: 선우영

제 목: 금강산가을

크 기: 130x65

제 작: 2000년​

선우영 - 금강산가을(130x65)

 

선우영 - 금강산가을(130x65) : 낙관

 

 

 


작품번호: 458

작 가: 송시엽

제 목: 비파와 박새

크 기: 40x131

제 작: 1999년

송시엽 - 비파와 박새(40x131)

 

송시엽 - 비파와 박새(40x131) : 낙관

 

송시엽 (1934 - ) 약력

 

-1934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출생

-1955-1959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59-1995년 국립미술출판사,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미술가로 창작활동을 하였다.

-1980년 공훈예술가, 2006년 인민예술가

-1995년 이후 송화미술원 서기장

-송시엽은 청소년잡지들과 여러 출판물에 600여건의 만화를 그렸으며 그림책 3권을 그려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1967년부터 선전화 창작을 전문으로 하면서 120여점의 전투적이며 호소성 있는 선전화를 그렸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81쪽 인용)


작품번호: 459

작 가: 심덕규

제 목: 내금강계곡

크 기: 95x65

제 작: 2000년​

심덕규 - 내금강계곡(95x65)

 

심덕규 - 내금강계곡(95x65) : 낙관

 

심덕규 (1945-2010) 약력

-1945년 양강도 신계읍에서 출생

-1968~1972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2.16 예술교육출판사 창작가

-공훈예술가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주체의 태양”으로 금메달, “조선의 목단”으로 2등상, “복받은 세대”로 1등상을 수상했다.


작품번호: 460

작 가: 안창국

제 목: 동석동에서

크 기: 96x167

제 작: 1995년​

안창국 - 동석동에서(96x167)
안창국 - 동석동에서(96x167) : 낙관

 

안창국 (1954- ) 약력

-1954년 평양에서 출생

-197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졸업 후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하였다.

-"명화가"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유명화가로 알려지고 있다.


작품번호: 461

작 가: 정종여

제 목: 양계장

크 기: 64x97

제 작: 1979

정종여 - 양계장(64x97)

 

정종여 - 양계장(64x97) : 낙관

 

 

정종여 (1914-1984) 약력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둘째 아들로 출생

- 1933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1940년 졸업

- 1936년~1944년 선전(鮮展)에서 입선 6회, 특선 2회

- 1951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1952년부터 10년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교원, 강좌장

- 1953년 이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 1955년 “굴진”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6년 “5월의 농촌”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8년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61년 이후부터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

- 1974년 공훈예술가, 1982년 인민예술가

- 1978년 이후 동맹현역미술가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미술가로 활동

- 1984년 작고


작품번호: 462

작 가: 정창모

제 목: 기명절지

크 기: 40x131

제 작: 2004년​

정창모 - 기명절지(40x131)

 

정창모 - 기명절지(40x131) : 낙관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작품번호: 463

작 가: 정창모

제 목: 화조

크 기: 40x131

제 작: 2004년​

정창모 - 화조(40x131)

 

정창모 - 화조(40x131) : 낙관

 

 


작품번호: 464

작 가: 최성룡

제 목: 포도와 참새

크 기: 40x131

제 작: 1998년​

최성룡 - 포도와 참새(40x131)
최성룡 - 포도와 참새(40x131) : 낙관

 

 

최성룡 (1942 - ) 약력

-1942년 평안북도 룡천군에서 출생

-1959년 평양미술대학 입학, 정종여, 김용준, 리률선에게서 배웠다. 학급에는 최계근, 김병희, 강신범 등이 있었다.

-졸업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배치

-1978년 “대동강반의 2월”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

-1978년 평양미술대학 교원으로 소환

-1988~1992년 평양미술대학 강좌장

-이 기간 동안 “숨은 영웅들”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련꽃과 물촉새”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92년 “폐허우에 일떠서는 평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1992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1992~1997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과 집행위원

-1992년 공훈예술가, 1997년 인민예술가

-1999년 현재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책임심의원


작품번호: 465

작 가: 황영준

제 목: 야매와 참새

크 기: 130x65

제 작: 미상

황영준 - 야매와 참새(130x65)
황영준 - 야매와 참새(130x65) : 낙관

 

황영준 (1919-2002) 약력

 

-1919년 충청남도 룡산군 계룡산에서 출생. 옥천군 보통학교졸업

-1931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후소회”에 입학하여 리석호, 김기창, 장우성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되어 전투부대에 파견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했다.

-1954-1960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6년 이후부터 평안남도 남포시 미술가동맹 위원장

-1966-198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후 송화미술원 고문을 지냈다.

-2002년 작고

-황영준은 주요 묘사대상의 형태처리를 선묘위주로 하면서 짧은 선과 점으로 형상을 완결짓고 있으며, 색채처리에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형상방법을 가지고 있다. 황영준은 자기의 창작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30대에 싹이 트고, 40대에 대를 세우기 시작한 개성화가 끊임없는 자양분을 받아 50대에 비로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79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