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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201
작 가: 강신범
제 목: 고향추억
크 기: 113x66
제 작: 1999년
강신범 (1944-2005) 약력
-1944년 서울시 돈암정에서 유명한 원로화가 강호의 맏아들로 출생
-1959~1966년 평양미술대학 전문부와 학부과정을 마쳤다.
-1966~1973년 중앙미술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미술가
-1974년부터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1976~1979년 창작된 작품 중 3점이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었고, 이중에서 “잠복근무를 마치고”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1992년 “풍년든 동파밭”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
-1992년 공훈예술가
“강신범은 천성이 고지식하여 창작에서 기교적인 측면을 내세우려 하지 않으며 우연한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섬세하게, 생동하게 형상화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74쪽 인용)
-2005년 작고
작품번호: 202
작 가: 김린권
제 목: 노안도
크 기: 68x137
제 작: 1995년
김린권 (1925 - 2004) 약력
-1925년 함경남도 인흥군에서 출생
-1938년부터 10년간 흥남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학교에 입학
-1951년 구소련 레닌그라드 레핀미술대학에서 6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문화선전성 지도원
-1964년-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영화 및 미술분과 위원장
-1965년 정종여와 함께 조선미술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1978년 공훈예술가
-1983년-1994년 문학예술작품 심사위원
-2004년 작고할 때까지 송화미술원 서기장으로 있었다.
-2004년 작고
작품번호: 203
작 가: 김병희
제 목: 외금강 온정령
크 기: 112x52
제 작: 미상
김병희 (1939-1993) 약력
-1939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1962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과에 입학한 그 해에 “오이밭의 할아버지”을 그려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66년 졸업 후 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임명되었고,
-1982년 만수대창작사에서 미술가, 창작실장으로 창작생활을 하였다.
-김병희는 리석호에게 발탁되어 “리석호 화실”에서 4년간 엄격한 스승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림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김병희의 대표작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은 일본 조총련의장 한덕수가 소장하고 있으며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2쪽 인용)
-2중 로력영웅 정영만은 김병희에 대해 “김병희는 조선화의 모든 화법에 정통하고 있는 미술가이며 눈에 크게 나타나지 않으나 실지에 있어서는 진폭이 큰 미술가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2쪽 인용)
-김병희는 불치의 병에 걸린 순간부터 초인간적인 힘으로 100여점에 달하는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해내었다.
-1993년 작고
작품번호: 204
작 가: 김성근
제 목: 구룡폭포
크 기: 67x101
제 작: 1990년
김성근 (1945 - ) 약력
-1945년 7월 평안북도 천마군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받고 기계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했으며 군복무를 거쳐 1971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72-1975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1986년까지 그는 명확한 전문없이 자연을 이것 저것 제기 되는대로 그리다가
-1987년(42세)부터 “총석정의 파도”를 그려 파도그림을 주동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파도의 전문가로 “김파도”라고까지 불리우게 되었다.
-1990년 이딸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수채화경연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91년 공훈예술가, 1998년 인민예술가
-1993년 그의 대표작 “해금강의 파도”(18mx8m)를 제작했다.
-1994년 김정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대걸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성근은 바다를 형상화하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며 변하는 바다, 격랑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파도, 폭풍을 일으키며 광란하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가는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32쪽 인용)
작품번호: 205
작 가: 김성호
제 목: 고향의 겨울
크 기: 96x50
제 작: 2000년
김성호 (1944- ) 약력
-1944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69-1973년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유화를 그렸고, 그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조선화를 그렸다.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여점이 입상(금메달과 1~3등) 되었다.
-1989년에 공훈예술가, 1996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김성호는 풍경화에서 추구한 정서는 매우 감성적이다. 그는 주로 아침과 흐린 날 등의 시간적 느낌에서 오는 독특한 정서를 통하여 자연의 미를 부각시키고 격이 있고 운치가 있는 고상한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그의 풍경화들에는 짙은 향토적 정서가 깔려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21쪽 인용)
작품번호: 206
작 가: 김승희
제 목: 금강산
크 기: 116x65
제 작: 1997년
김승희 (1939- ) 약력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1957년 동경 조선중고등학교 졸업 후 동경 무사시노미술대학 유화과에 입학
-1959년 20세 생일날에 북한에 입국(귀국)하여 1개월 후 김일성을 접견
-1963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미술창작사,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미술가로 35년간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87년 "통일춤"으로 국가미술전람회 3등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 80여점의 조선화를 가지고 만수대창작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93년 "신천의 102 어린이"로 국가미술전람회 3등상
-1995년 인민예술가
-김승희는 사색의 밀도가 높고 필치가 개성적이며 색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것 등 미술가로서 훌륭한 창작적 기질이 남김없이 표현되었다. 풍경화의 작품내용에 따라 형상방법들이 다양한 특징이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5쪽 인용)
작품번호: 207
작 가: 김춘전
제 목: 선죽교
크 기: 87x59
제 작: 1998년
김춘전 (1941- ) 약력
-1941년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출생
-1964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 졸업 후 만수대창작사 창작가
-1974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단장
-1974년 공훈예술가, 1985년 인민예술가
-1985년 뽈스카에서 진행된 국제반전미술전람회에서 특별상과 금메달
-1992년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길에서"로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1996년 "사색"으로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춘전은 다른 조선화 화가들처럼 작품을 많이 그리지 못한다. 그의 작품은 많은 것이 생략된 가운데 그려진 돌과 바위, 나무와 풀 한포기도 깊은 의미가 담겨지게 하려는 것이 확연히 알려진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91쪽 인용)
작품번호: 208
작 가: 문화춘
제 목: 만물상겨울
크 기: 130x65
제 작: 미상
문화춘 (1938 - ) 약력
-193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출생하여 해방후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문하연은 평양음악대학 초대 학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한 집안이였다.
-문화춘은 17세인 1954년에 평양미술대학 예비과(2년), 본과(4년)을 수료하고,
-1960년에 졸업하여 모교의 교원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이후 철도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창작실장
-1971년 그의 대표작 “내금강의 아침(90x175cm)"으로 김정일로부터 표창장.
-1987년 공훈예술가
-1989년 1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작품번호: 209
작 가: 방학주
제 목: 장고춤
크 기: 52x119
제 작: 1996년
방학주 (1943 - ) 약력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56-1960 함경북도 도미술가동맹 야간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68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를 졸업
-1968-1987년까지 함경북도 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였고,
-1987년 이후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공훈예술가
-1995년 인민예술가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수법으로 그림을 수예품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형상화 하고, 특히 인물화와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참대숲”은 남한/해외에서 인기가 높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710-711쪽 참조)
작품번호: 210
작 가: 심덕규
제 목: 내금강계곡
크 기: 129x64
제 작: 2000년
심덕규 (1945-2010) 약력
-1945년 양강도 신계읍에서 출생
-1968~1972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2.16 예술교육출판사 창작가
-공훈예술가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주체의 태양”으로 금메달, “조선의 목단”으로 2등상, “복받은 세대”로 1등상을 수상했다.
작품번호: 211
작 가: 정창모
제 목: 화조(국화)
크 기: 40x131
제 작: 1998년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작품번호: 212
작 가: 차재렵
제 목: 외금강계곡
크 기: 94x83
제 작: 1991년
차제렵 (1948- ) 약력
-1948년 평양시 중구역에서 출생
-1971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1~1986 조선력사박물관 미술가, 문화보존총국 미술창작실 창작가
-1987년 평양 중앙미술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창작가
-1989~1995년 중국과 러시아에서 창작활동
-2001년 공훈예술가
작품번호: 213
작 가: 최계근
제 목: 마을 느티나무
크 기: 139x48
제 작: 1998년
최계근 (1942- ) 약력
-1942년 남포시에서 출생
-강선제철소에서 일하면서 현지파견미술가 송찬형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59년 평양미술대학 입학
-1966년 그의 졸업작품 “강철의 전사들”(232x143cm)은 제9차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1966-1974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단장
-1974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94년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
-1996년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위원장
-1999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과 집행위원
-인민예술가로 수예가인 공정옥이 그의 아내이다.
-최계근은 비교적 복잡한 다인물구상처리에서 각이한 인물들의 개성적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묘가 확고하고 인물들의 각이한 행동성격에 대한 표현력도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다. 색에 대한 감각도 있고 화면에서 색채통일도 잘 보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02쪽에서 인용)
작품번호: 214
작 가: 최창호
제 목: 비봉포
크 기: 92x60
제 작: 1997년
최창호 (1960 - ) 약력
-1960년 함경북도 연산군에서 출생
-1983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이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9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첫 승리를 거둔 동지들과 함께”로 금메달 수상
-1994년 “첫 승리”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첫 승리” 금메달 수상
-1997년 공훈예술가, 2012년 인민예술가
-최창호는 정영만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다.
작품번호: 215
작 가: 황영준
제 목: 소백산아침
크 기: 99x51
제 작: 1998년
황영준 (1919-2002) 약력
-1919년 충청남도 룡산군 계룡산에서 출생. 옥천군 보통학교졸업
-1931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후소회”에 입학하여 리석호, 김기창, 장우성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되어 전투부대에 파견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했다.
-1954-1960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6년 이후부터 평안남도 남포시 미술가동맹 위원장
-1966-198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후 송화미술원 고문을 지냈다.
-2002년 작고
-황영준은 주요 묘사대상의 형태처리를 선묘위주로 하면서 짧은 선과 점으로 형상을 완결짓고 있으며, 색채처리에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형상방법을 가지고 있다. 황영준은 자기의 창작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30대에 싹이 트고, 40대에 대를 세우기 시작한 개성화가 끊임없는 자양분을 받아 50대에 비로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7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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