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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151
작 가: 김상직
제 목: 철쭉과 소나무
크 기: 132x67
제 작: 1996년
김상직 (1934 - 작고) 약력
-1934년 4월 함경북도 라진군에서 출생
-로동을 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20대 때 유화 12점을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
-1961년 27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벽화를 수업받았고, 대학시절 리석호로부터 다년간 개별지도를 받았으며 1965년에 졸업
-대학졸업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조선미술가동맹, 평양미술대학교원과 강좌장,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생활과 후비육성사업을 하였다.
-1977년 벽화 “산전막에 남긴 사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을 수상
-1996년 새로 발족한 송화미술원 원장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공훈예술가를 수여받았다.
-벽회창작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활동은 조선화창작으로 그의 전성기를 보냈다.
작품번호: 152
작 가: 김성근
제 목: 바다파도
크 기: 196x74
제 작: 1999년
김성근 (1945 - ) 약력
-1945년 7월 평안북도 천마군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받고 기계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했으며 군복무를 거쳐 1971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72-1975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1986년까지 그는 명확한 전문없이 자연을 이것 저것 제기 되는대로 그리다가
-1987년(42세)부터 “총석정의 파도”를 그려 파도그림을 주동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파도의 전문가로 “김파도”라고까지 불리우게 되었다.
-1990년 이딸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수채화경연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91년 공훈예술가, 1998년 인민예술가
-1993년 그의 대표작 “해금강의 파도”(18mx8m)를 제작했다.
-1994년 김정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대걸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성근은 바다를 형상화하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며 변하는 바다, 격랑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파도, 폭풍을 일으키며 광란하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가는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32쪽 인용)
작품번호: 156
작 가: 리률선
제 목: 호랑이
크 기: 69x136
제 작: 1999년
리률선 (1933 - ) 약력
-1933년 황해북도 은천군에서 출생
-1949년 평양체신전문학교 졸업 후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중상을 입었다.
-1952년 평양미술대학입학, 1957년 졸업
-1961년 "간석지개간"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8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
-1980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1988년 "진펄길을 헤치고"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57~1998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 부교수, 조선화학부장
-196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 중앙위원, 집행위원으로 활동
-미술작품심의위원회 심의위원, 국가학위학직 심의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조선화법”(1983년), “조선화화법기초”(1984년)이 있다.
작품번호: 157
작 가: 문화춘
제 목: 지안개계곡
크 기: 130x65
제 작: 2000년
문화춘 (1938 - ) 약력
-193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출생하여 해방후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문하연은 평양음악대학 초대 학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한 집안이였다.
-문화춘은 17세인 1954년에 평양미술대학 예비과(2년), 본과(4년)을 수료하고,
-1960년에 졸업하여 모교의 교원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이후 철도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창작실장
-1971년 그의 대표작 “내금강의 아침(90x175cm)"으로 김정일로부터 표창장.
-1987년 공훈예술가
-1989년 1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작품번호: 158
작 가: 박대연
제 목: 정원에서
크 기: 74x125
제 작: 1988년
박대연 (1955 - ) 약력
-1955년 7월 평양에서 출생
-197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졸업
-1985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호박풍작이 든 일터에서”로 금메달
-198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전선길의 밤”으로 1등상
-198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김철의 숨결”로 금메달
-2005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 그는 열정적이고 강한 색채형상과 기백이 흘러넘치는 박력있는 필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구도설정 등은 그의 창작적 특기이다.
작품번호: 159
작 가: 방학주
제 목: 봄맞이춤
크 기: 52x119
제 작: 1996년
방학주 (1943 - ) 약력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56-1960 함경북도 도미술가동맹 야간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68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를 졸업
-1968-1987년까지 함경북도 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였고,
-1987년 이후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공훈예술가
-1995년 인민예술가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수법으로 그림을 수예품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형상화 하고, 특히 인물화와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참대숲”은 남한/해외에서 인기가 높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710-711쪽 참조)
작품번호: 160
작 가: 송시엽
제 목: 호랑이
크 기: 81x150
제 작: 1996년
송시엽 (1934 - ) 약력
-1934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출생
-1955-1959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59-1995년 국립미술출판사,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미술가로 창작활동을 하였다.
-1980년 공훈예술가, 2006년 인민예술가
-1995년 이후 송화미술원 서기장
-송시엽은 청소년잡지들과 여러 출판물에 600여건의 만화를 그렸으며 그림책 3권을 그려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1967년부터 선전화 창작을 전문으로 하면서 120여점의 전투적이며 호소성 있는 선전화를 그렸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81쪽 인용)
작품번호: 161
작 가: 엄준홍
제 목: 산촌의 봄
크 기: 176x96
제 작: 미상
엄준홍 (1944 - ) 약력
-194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79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졸업 후 “2월 12일 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하여 조선화창작단 실장
-1992년 공훈예술가
-엄준홍의 풍경화는 조형미가 있는 예술적 형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 10여점은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번호: 162
작 가: 정창모
제 목: 화조
크 기: 40x131
제 작: 1998년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작품번호: 163
작 가: 최창호
제 목: 백두산의 봄
크 기: 130x67
제 작: 1997년
최창호 (1960 - ) 약력
-1960년 함경북도 연산군에서 출생
-1983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이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9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첫 승리를 거둔 동지들과 함께”로 금메달 수상
-1994년 “첫 승리”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첫 승리” 금메달 수상
-1997년 공훈예술가, 2012년 인민예술가
-최창호는 정영만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다.
작품번호: 164
작 가: 한명렬
제 목: 장미와 참새
크 기: 135x68
제 작: 1997년
한명렬 (1926-작고) 약력
-1926년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출생
-1949년 홍익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하여 배운성, 유진명, 이응로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업을 이어가다 6.25 전쟁시기에 의용군으로 인민군대에 입대.
-1954년 제대 후 신의주 법랑철기공장에서 미술가로 있었다.
-1963년 “첫 솜씨”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65년 “대동교복구”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75년 “내금강의 진주담”으로 김정일위원장 표창
-1976년부터 평안북도 미술창작사에 소환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하다가 송화미술원에서 말년을 보냈다.
-1988년 공훈예술가를 수여받았다.
작품번호: 165
작 가: 황영준
제 목: 금강의 로송
크 기: 160x60
제 작: 1998년
황영준 (1919-2002) 약력
-1919년 충청남도 룡산군 계룡산에서 출생. 옥천군 보통학교졸업
-1931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후소회”에 입학하여 리석호, 김기창, 장우성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되어 전투부대에 파견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했다.
-1954-1960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6년 이후부터 평안남도 남포시 미술가동맹 위원장
-1966-198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후 송화미술원 고문을 지냈다.
-2002년 작고
-황영준은 주요 묘사대상의 형태처리를 선묘위주로 하면서 짧은 선과 점으로 형상을 완결짓고 있으며, 색채처리에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형상방법을 가지고 있다. 황영준은 자기의 창작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30대에 싹이 트고, 40대에 대를 세우기 시작한 개성화가 끊임없는 자양분을 받아 50대에 비로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7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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