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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651
작 가: 김기만
제 목: 새우
크 기: 46x34
제 작: 1996년
김기만 (1929-2004) 약력
-1929년 서울시 종로구에서 출생
-4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여 부모를 대신한 맏형 운보 김기창의 슬하에서 살았다.
-1949년 경기공립고등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
-6.25전쟁시기 의용군에 입대하여 1955년까지 군사복무
-1956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에 입학
-1960-1965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5-1982년 조선민속박물관 미술부장
-1983-사망할 때까지 철도미술창작사 실장 등 미술창작기관에서 활동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2000년 12월 남북이산가족상봉시 서울을 방문하여 맏형 운보 김기창의 병석을 방문하여 서로 작품을 맞바꾸었다.
-2004년 작고
작품번호: 652
작 가: 김린권
제 목: 감나무
크 기: 58x60
제 작: 1998년
김린권 (1925 - 2004) 약력
-1925년 함경남도 인흥군에서 출생
-1938년부터 10년간 흥남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학교에 입학
-1951년 구소련 레닌그라드 레핀미술대학에서 6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문화선전성 지도원
-1964년-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영화 및 미술분과 위원장
-1965년 정종여와 함께 조선미술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1978년 공훈예술가
-1983년-1994년 문학예술작품 심사위원
-2004년 작고할 때까지 송화미술원 서기장으로 있었다.
-2004년 작고
작품번호: 653
작 가: 리근화
제 목: 금강산계곡
크 기: 140x47
제 작: 1997년
리근화 (1929- ) 약력
-호는 석계(石溪). 1929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84년 공훈예술가, 1996년 인민예술가
-1986~199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조선화분과 위원
-1996년 평양 송화미술원 창립요원
-2003년 9월 20~21일 남쪽가족개별 상봉시, 만남의 징표로 병풍과 액자를 제작하여 “부모님 제사 때 사용하라”고 남쪽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한겨레신문 2003-09-21)
작품번호: 654
작 가: 리문길
제 목: 금강산 만물상 8폭연결
크 기: 380x133
제 작: 1999년
* 8폭 그림 사진을 각각 고화질 카메라로 찍어서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8폭 그림은 실제로 연결하였을 때 정확히 이어져 있습니다.
리문길 - 금강산 만물상 8폭연결(380x133) : 각 폭 크게보기
리문길 (1953- ) 약력
-1953년 청진시에서 출생
-197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9~2001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창작가
-1997년 공훈예술가
-2002년 이후 문예총중앙위원회 창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리문길은 철학적 깊이가 있고 정서가 있는 조선화들을 창작한 재능있는 창작가이다. 시적이고 필치가 힘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하여 재능있는 창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작품번호: 655
작 가: 리석호
제 목: 매화꽃나무
크 기: 31x130
제 작: 1966년
리석호 (1904-1971) 약력
-號는 일관으로 경기도 안성군에서 서자출신으로 출생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21세인 1925년에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안중식의 서화협회에 들어갔다.
-1928년 이당 김은호는 자기의 개인화숙에 그를 옮겨놓고 전문적인 지도를 했다.
-1927-1929 선전(鮮展) 서예부 입선
-1934-1944 선전(鮮展) 동양화부 입선 8회
-1950년 조선미술동맹에 가담 후 월북
-1951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1956년, 1959년, 1960년에 월남과 구소련을 조선문화대표단으로 방문
-195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국화”로 1등상 수상
-195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해바라기”로 1등상 수상
-1957년 김일성주석 표창장
-1958년 작품 “청봉”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
-1959-1963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1971년 작고
작품번호: 656
작 가: 방학주
제 목: 백두산 8폭연결
크 기: 380x133
제 작: 2000년
* 8폭 그림 사진을 각각 고화질 카메라로 찍어서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8폭 그림은 실제로 연결하였을 때 정확히 이어져 있습니다.
방학주 - 백두산8폭연결(380x133) : 각 폭 크게보기
방학주 (1943 - ) 약력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56-1960 함경북도 도미술가동맹 야간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68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를 졸업
-1968-1987년까지 함경북도 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였고,
-1987년 이후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공훈예술가
-1995년 인민예술가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수법으로 그림을 수예품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형상화 하고, 특히 인물화와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 “참대숲”은 남한/해외에서 인기가 높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710-711쪽 참조)
작품번호: 657
작 가: 선우영
제 목: 금강산노을
크 기: 46x34
제 작: 1999년
선우영 (1946-2009) 약력
-1946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 졸업
-1969-1972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1972-2009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2009년에 사망했다.
-198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장군님의 뜻을 안고”로 1등상 수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특징은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의 묘사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의 생략과 같은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고 선우영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8쪽 인용)
-그가 창작한 “금강산석가봉”과 “범”은 세화기법으로 그린 조선화중에서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번호: 658
작 가: 선우영
제 목: 금강산에서
크 기: 97x64
제 작: 1999년
작품번호: 659
작 가: 정창모
제 목: 기명절지
크 기: 40x131
제 작: 2004년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작품번호: 660
작 가: 정창모
제 목: 화조
크 기: 40x131
제 작: 2004년
작품번호: 661
작 가: 최계근
제 목: 련주담
크 기: 94x34
제 작: 1998년
최계근 (1942- ) 약력
-1942년 남포시에서 출생
-강선제철소에서 일하면서 현지파견미술가 송찬형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59년 평양미술대학 입학
-1966년 그의 졸업작품 “강철의 전사들”(232x143cm)은 제9차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1966-1974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단장
-1974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94년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
-1996년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위원장
-1999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과 집행위원
-인민예술가로 수예가인 공정옥이 그의 아내이다.
-최계근은 비교적 복잡한 다인물구상처리에서 각이한 인물들의 개성적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묘가 확고하고 인물들의 각이한 행동성격에 대한 표현력도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다. 색에 대한 감각도 있고 화면에서 색채통일도 잘 보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02쪽에서 인용)
작품번호: 662
작 가: 한명렬
제 목: 목련과 참새
크 기: 34.5x64
제 작: 2000년
한명렬 (1926-작고) 약력
-1926년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출생
-1949년 홍익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하여 배운성, 유진명, 이응로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업을 이어가다 6.25 전쟁시기에 의용군으로 인민군대에 입대.
-1954년 제대 후 신의주 법랑철기공장에서 미술가로 있었다.
-1963년 “첫 솜씨”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65년 “대동교복구”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75년 “내금강의 진주담”으로 김정일위원장 표창
-1976년부터 평안북도 미술창작사에 소환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하다가 송화미술원에서 말년을 보냈다.
-1988년 공훈예술가를 수여받았다.
작품번호: 663
작 가: 현규명
제 목: 노안도(3)
크 기: 57x96
제 작: 1998년
현규명 (1945 - ) 약력
-1945년 3월 서울 상왕십리에서 출생
-한국전쟁시기에 미술가인 아버지 현충섭과 함께 월북했다.
-1964년 평양미술대학 전문부 유채과를 졸업한 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를 통신으로 졸업했다.
-1974년부터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그리고 문학예술종합출판사 등 기관에서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78년 이후 조선화로 전환하여 김병희지도를 받으면서 몰골기법을 배웠다.
-198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기러기떼 나는 간석지”로 2등상
-198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강산팔선녀”로 3등상
-그는 20년간 연구와 창작을 통하여 적지 않은 기러기그림들을 형상하였다. 현재 그는 기러기그림에서 특기있는 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번호: 664
작 가: 현규명
제 목: 노안도(4)
크 기: 57x96
제 작: 1998년
작품번호: 665
작 가: 황영준
제 목: 금강산계곡
크 기: 160x60
제 작: 1998년
황영준 (1919-2002) 약력
-1919년 충청남도 룡산군 계룡산에서 출생. 옥천군 보통학교졸업
-1931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후소회”에 입학하여 리석호, 김기창, 장우성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되어 전투부대에 파견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했다.
-1954-1960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6년 이후부터 평안남도 남포시 미술가동맹 위원장
-1966-198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이후 송화미술원 고문을 지냈다.
-2002년 작고
-황영준은 주요 묘사대상의 형태처리를 선묘위주로 하면서 짧은 선과 점으로 형상을 완결짓고 있으며, 색채처리에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형상방법을 가지고 있다. 황영준은 자기의 창작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30대에 싹이 트고, 40대에 대를 세우기 시작한 개성화가 끊임없는 자양분을 받아 50대에 비로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7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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