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매작품 : 북한유화 10점
2. 전시·판매기간 : 2022년 5월 23일~5월 29일
3. 구매문의 : 010-4432-4676
작품번호 : 376
작가 : 서대무 (1940- )
제목 : 금강문 (1999년작)
크기 : 90x60cm (약30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대무 (1940 - ) 약력
-1940년 평안북도 구장군에서 출생
-1964년 평양미술대학 졸업이후 34년간 만수대창작사 벽화창작단 창작가
-1973-1975년 서대무가 초안하고 주창작한 평양지하철도 준공식에서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음.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73쪽 인용)
-1975년 공훈예술가, 2002년 인민예술가
-서대무 유화작품은 우리나라 화랑에서도 소개되어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작품번호 : 377
작가 : 안명석 (1960- )
제목 : 방목지 (2006년작)
크기 : 92x62cm (30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안명석 (1960 - ) 약력
- 1960년 평양시에서 출생
- 1983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졸업 후 백호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 1999년 공훈예술가
- 2007년 1월 중국 항저우(杭州)열린 조선의 유명화가 15인의 유화작품전시회에 참여하여 소박한 품격과 짙은 화풍 및 풍부한 색채로 높은 격찬을 받았다.
작품번호 : 425
작가 : 최제남 (1934-2015)
제목 : 고향여름 (2002년작)
크기 : 69x54cm (20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최제남 (1934-2015) 약력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출생
-1951년 평양미술대학 입학해서 한상익으로 부터 그림수업을 받았다.
-1952년 모스크바 방직대학 장식미술학부에서 5년간 미술수업을 받았다.
-1957년에 귀국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 교무부학장, 과학부학장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그는 교육행정사업과 국가학위학직 심의사업, 대외사업 등으로 하여 창작적 작품형상을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980년에 부교수, 1981년에 학사학위를 받았다.
-1986-1994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문예총 중앙위원회 위원, 범민련 북측본부 중앙위원, 미술부문국가심의위원회 위원
-1986-1995년 중앙미술창작사 사장으로 활동
-1998년 조각가 곽태영과 함께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2015년 작고
작품번호 : 429
작가 : 한태순 (1936- )
제목 : 접선봉 (1998년작)
크기 : 88x64cm (약30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태순 (1937 - ) 약력
-1937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5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과 졸업
-1965-1974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1974년 이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 교수로 활동
-1987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작품번호 : 813
작가 : 최창식 (1920-2003)
제목 : 가을공원 (년도미상)
크기 : 45x38cm (8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최창식 (1920 - 2003) 약력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출생.
-예산에서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의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한국전쟁 전까지 예산과 서울에서 미술교사로 있었다.
-1949년 국전 1회에 아들 최광진 이름으로 “석고가 있는 정물”로 특선.
-한국전쟁때 의용군에 입대, 1954년 이후 철도미술창작사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최창식은 길진섭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여러 작품을 공동으로 창작하였다.
-그는 일찍기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년도미상).
-최창식은 깨끗한 창작적 량심을 가지고 나라의 미술발전을 위한 미술전람회에 거의 빠짐없이 작품을 내놓았다. 전람회에 꾸준한 창작적 열정을 가지고 형상성 있는 작품을 내놓은 그의 미술가로서의 의무와 책임감을 언제나 잊지 않고 성실히 수행해 온 창작가적 량심의 발현이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97쪽 인용)
-2003년 작고
작품번호 : 912
작가 : 정영화 (1948- )
제목 : 구월산가을 (2002년작)
크기 : 124x95cm (60호)
그림상태 : 캔버스/좌중간 부분에 물감이 약간떨어진 부분이 있음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영화 (1948 - ) 약력
-1948년 11월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출생하여 강원도 평강군에서 고급중학교 졸업
-1977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졸업 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단장으로 활동
-1983년 전국선전화전람회 1등상
-1988년 국제미술전람회 2등상
-198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아침”으로 1등상
-198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저녁”으로 2등상
-1991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서화전시회에서 북측대표로 참석
-1992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땅과 전사”로 1등상
-1992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1993년 전국선전화전람회에서 1등상
-1994년 전국선전화전람회에서 금메달
-1999년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그의 그림은 농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상 깊은 생활의 한 순간을 전형적인 환경과 생활세부에 담아 집중시켜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깊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63-765쪽 참조)
-현재 남한에서 인민예술가 박래천과 함께 가장 높은 가격으로 매매되는 화가이다.
작품번호 : 915
작가 : 황태년 (1927-1996)
제목 : 성균관가을 (1994년작)
크기 : 72x60cm (약25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황태년 (1927 - 1996) 약력
-1927년 제주도 구좌면에서 출생
-1945년 이후 청진제강소, 함경북도 미술제작소에서 1954년까지 미술활동
-1954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바다의 환호”로 2등상 수상
-1955년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북도 위원회 현역미술가
-1963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
-197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위원
-198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성균관의 가을”로 2등상 수상
-199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끊어진 혈맥을 잇자!”로 2등상 수상
-1991년 200여점의 작품을 가지고 조선미술박물관에서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창작공로로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1996년 작고
작품번호 : 원로 02/03, 수채화 2점
작가 : 강 호 (1908-1984)
제목 : 고향집/수채화 (1964년작), 교외에서/수채화 (1957년작)
크기 : 22x34cm(4호)/29x41cm(5호)
그림상태 : 종이에 수채/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강 호 (1908-1984) 약력
북한발행(1999년)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 4쪽(260~263쪽)분량에 걸쳐 ’강호 약력서‘를 게재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8년 :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출생.
-1921년(13세) : 일본 경도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심부름꾼, 우유와 신문배달 등 고학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1927년(19세) : 서울에서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동맹’에 가맹하여 김복진에 이어 미술부와 영화부를 책임지고 사업.
-1932년(24세) : 월간잡지 ‘우리 동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38년(30세) :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1942년 까지 4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46년(38세) :‘북조선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
-1946-1950년 : 한국전쟁 직전까지 남조선연극동맹서기장
-1950-1980년 : 평양연극영화대학과 평양미술대학 예술학부 교수학직을 수여받고(1961년), 학부장, 강좌장을 지냈다.
-1965년 :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영화미술 ‘생의 노래’로 2등상을 수상. 강호의 풍부한 창작경험과 예술적 분석력, 높은 조형적 창작능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강호는 북한정권수립 초기 소위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북한 무대 및 영화미술의 선각자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본 편람에는 기록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수채화를 대표하는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제자이며, 공훈예술가 강신범(1944-2005)과 강신일이 강호의 아들이다.
*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채화 ‘교외에서’ 그림 뒷면에 자필로 확인서를 써준 경위는 다음과 같다.
북한창작사가 해외그림판매를 위해서 북한화가들을 개별 방문하여 수집한 북한작품 중에서 강호의 그림을 발견한 장일남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어데서 선생님의 그림을 구하셨습네까’ 하면서 해외로 팔려나간 것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면서 자필확인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작품번호 : 원로-04
작가 : 황헌영 (1912-1995)
제목 : 총석정노을(1989년작)
크기 : 80x65cm (25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황헌영 (1912-1995) 약력
-1912년 평양시 강남군에서 출생
-가정형편이 비교적 좋아 1932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선전 11회에서 “아침의 보통문”, 18회에서 “창”과 “밭”으로 3점이 입선
-1938년 동경 제국미술학교 졸업
-1946년 평양시 미술동맹 부위원장, 북조선 미술동맹 부위원장
-1948-1967년까지 평양미술대학 학부장, 강좌장
-1961년 부교수학직을 수여받았다.
-1969-1995 평안북도에서 창작사업을 했다.
-황헌영은 평생 100점을 넘기지 못한 적은 수의 소품들을 내놓았지만 풍경화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개성이 뚜렷하고 풍부한 조형미를 이룩한 미술가이다. 평양미술대학 1회 졸업생부터 1960년대 말까지 졸업한 수백명이 그의 지도하에 기초를 닦고 유명한 미술가로 성장시켰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86-289쪽 참조)
-1995년 작고
작품번호 : 원로-08
작가 : 정관철 (1916-1983)
제목 : 옥수수밭 (1982년작)
크기 : 24x37cm (5호)
그림상태 : 캔버스/양호
가격 :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관철 (1916-1983) 약력
-평양시 중구역에서 하급관리의 3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2년 첫 작품 수채화 “보통문풍경”이, 1933년 “길”, 1935년 “낙산기슭에서”으로 선전(鮮展)에 3번 입선했다.
-1937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매혈로 학비를 벌어 1942년에 졸업
-1949년 조선미술가동맹대회에서 동맹위원장으로 선거된 이후 작고할 때까지 35년 동안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북한미술을 주도하였다.
-“김일성상”과 “인민상”을 수여받았으며, 미술부문에서 첫 “공훈예술가”와 “인민예술가‘로 되었다.
-그의 대표작 유화 “보촌보의 햇불”(333x248cm)은 1948년 창작, 1955년 개작되어 북한에서는 최대의 걸작으로 그리고 불후의 명작으로 받들고 있다.
-1983년 작고
'정기 전시 판매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료) 2022년 제10회 전시판매전 (6/20-6/26) (0) | 2022.06.19 |
---|---|
(종료) 2022년 제9회 전시판매전 (6/6-6/12) (0) | 2022.06.05 |
(종료) 2022년 제7회 전시판매전 (5/9-5/15) (0) | 2022.05.08 |
(종료) 2022년 제6회 전시판매전 (4/25-5/1) (0) | 2022.04.24 |
(종료) 2022년 제5회 전시판매전 (4/11-4/17) (0) | 2022.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