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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전시 판매전/원로작가 15인전

원로작가 15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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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01

작 가: 리석호

제 목: 소나무

크 기: 58 x 48

제 작: 1966년​

리석호 - 소나무 (58 x 48)
리석호 - 소나무 (58 x 48) : 낙관

 

리석호 (1904-1971) 약력

-號는 일관으로 경기도 안성군에서 서자출신으로 출생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21세인 1925년에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안중식의 서화협회에 들어갔다.

-1928년 이당 김은호는 자기의 개인화숙에 그를 옮겨놓고 전문적인 지도를 했다.

-1927-1929 선전(鮮展) 서예부 입선

-1934-1944 선전(鮮展) 동양화부 입선 8회

-1950년 조선미술동맹에 가담 후 월북

-1951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1956년, 1959년, 1960년에 월남과 구소련을 조선문화대표단으로 방문

-195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국화”로 1등상 수상

-195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해바라기”로 1등상 수상

-1957년 김일성주석 표창장

-1958년 작품 “청봉”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

-1959-1963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1971년 작고

 


 

작품번호: 02

작 가: 강 호

제 목: 고향집

크 기: 22 x 34

제 작: 1957년​

강 호 - 고향집 (22 x 34)

 

강호 (1908-1984) 약력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에서 가난한 소작농 맏아들로 출생

-1927년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동맹에 가맹하여 미술부를 책임

-1932 우리 동무 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생활을 했으며,

-1938 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으로 1942년 까지 4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48-1950년 남조선연극동맹 서기장

-1950년 평양연극영화대학과 평양미술대학에서 무대미술학부장과 강좌장

-1961년 예술학부교수 학직을 수여받았다.

-1965년 영화미술 생의 노래는 조선로동당창건 20주년경축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을 수상했다.

-강호는 신병으로 교단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해방전 우리나라 살림집과 생활양식 (1980), “해방전 우리나라 옷양식”(1981)을 각각 출판하였다

-강호는 북한정권수립 초기 소위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북한 무대 및 영화미술의 선각자의 한 사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후비양성, 도서집필사업을 통하여 북한미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미술가편람 260-263쪽 인용)

-1984년 작고


 

작품번호: 03

작 가: 강 호

제 목: 교외에서

크 기: 29 x 41 

제 작: 1964년​

강 호 - 교외에서 (29 x 41)
교외에서 됫면 - 인민예술가 장일남 감정서

 


 

작품번호: 04

작 가: 황헌영

제 목: 총석정 노을

크 기: 65 x 80

제 작: 1989년​

황헌영 - 총석정 노을 (65 x 80)

 

황헌영 (1912-1995) 약력

-1912년 평양시 강남군에서 출생

-가정형편이 비교적 좋아 1932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선전 11회에서 “아침의 보통문”, 18회에서 “창”과 “밭”으로 3점이 입선

-1938년 동경 제국미술학교 졸업

-1946년 평양시 미술동맹 부위원장, 북조선 미술동맹 부위원장

-1948-1967년까지 평양미술대학 학부장, 강좌장

-1961년 부교수학직을 수여받았다.

-1969-1995 평안북도에서 창작사업을 했다.

-황헌영은 평생 100점을 넘기지 못한 적은 수의 소품들을 내놓았지만 풍경화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개성이 뚜렷하고 풍부한 조형미를 이룩한 미술가이다. 평양미술대학 1회 졸업생부터 1960년대 말까지 졸업한 수백명이 그의 지도하에 기초를 닦고 유명한 미술가로 성장시켰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86-289쪽 참조)

-1995년 작고

 


 

작품번호: 06

작 가: 정종여

제 목: 잉어

크 기: 59 x 103

제 작: 1968년​

정종여 - 잉어 (59 x 103)

 

정종여 (1914-1984) 약력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둘째 아들로 출생

- 1933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1940년 졸업

- 1936년~1944년 선전(鮮展)에서 입선 6회, 특선 2회

- 1951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1952년부터 10년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교원, 강좌장

- 1953년 이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 1955년 “굴진”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6년 “5월의 농촌”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8년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61년 이후부터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

- 1974년 공훈예술가, 1982년 인민예술가

- 1978년 이후 동맹현역미술가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미술가로 활동

- 1984년 작고


 

작품번호: 07

작 가: 림홍은

제 목: 토마토

크 기: 58 x 42

제 작: 1999년​

림홍은 - 토마토 (58 x 42)

 

림홍은 (1914-1999) 약력

 

-황해남도 재령군에서 출생

-미술공부를 위해 일본대학 예술과에 입학했으나 학비 때문에 1937년에 중퇴

-1937-1940 아동잡지 “아이생활”의 편집장

-1940-1943년 선전(鮮展)에 3회 입선

-한국전쟁시기에는 전쟁승리에 대한 선전화를 집중적으로 제작하였다.

-북한 제1회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살지는 농촌”으로 3등상 수상

-1956년까지 로동신문사 화실편집원, 국립미술제작소 소장을 지냈다.

-북한 첫 아동영화 “금토끼와 은토끼”를 제작하여 아동영화 미술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수행

-그의 80세 생일에 지금까지 창작한 미술작품 4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20점이 조선미술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그의 80세 생일상을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생일상을 보내주면서 인민예술가”의 명예칭호를 수여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03쪽 인용)

-1997년 문학예술종합출판사에서 219쪽에 달하는 “림홍은화집”을 발행하였다.

-1999년 작고

 


 

작품번호: 08

작 가: 정관철

제 목: 옥수수밭

크 기: 44 x 37

제 작: 1982년​

정관철 - 옥수수밭 (44 x 37)

 

정관철 (1916-1983) 약력

-평양시 중구역에서 하급관리의 3째 아들로 태어났다.

-1932년 첫 작품 수채화 “보통문풍경”이, 1933년 “길”, 1935년 “낙산기슭에서”으로 선전(鮮展)에 3번 입선했다.

-1937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매혈로 학비를 벌어 1942년에 졸업

-1949년 조선미술가동맹대회에서 동맹위원장으로 선거된 이후 작고할 때까지 35년 동안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북한미술을 주도하였다.

-“김일성상”과 인민상”을 수여받았으며, 미술부문에서 첫 공훈예술가”와 인민예술가‘로 되었다.

-그의 대표작 유화 “보촌보의 햇불”(333x248cm)은 1948년 창작, 1955년 개작되어 북한에서는 최대의 걸작으로 그리고 불후의 명작으로 받들고 있다.

-1983년 작고

 

 


 

작품번호: 09

작 가: 최재덕

제 목: 여인

크 기: 37 x 50

제 작: 1955년​

최재덕 - 여인 (37 x 50)

최재덕 (1916 - 1973) 약력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출생

-1936-1940년 선전(鮮展) 15회, 18회, 19회(2점)등 4점이 입선되었다.

-1938년 일본 태평양미술학교 졸업

-1948년 정현웅, 김만형, 리쾌대 등과 함께 좌익미술단체를 조직

-1949년 제1회 대한민국 국전에 작품 “산”으로 추천작가로 참여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월북

-1958년 “용광로(88x125)”, 1961년 “사과따는 처녀”(40호)는 공간적 깊이와 색채의 풍부성, 그리고 센 붓질은 화가의 개성적인 창작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73년 작고


 

작품번호: 10

작 가: 김만형

제 목: 가을들판

크 기: 61 x 28

제 작: 미 상

김만형 - 가을들판 (61 x 28)

 

김만형 (1916-1984) 약력

- 경기도 개성시에서 출생

- 1929년 경성 제1 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4년 일본 제국미술학교에 입학.

- 선전(鮮展) 16회(1937년)~22회까지 6점이 입선, 23회는 “언덕”으로 특선

- 1939년 졸업 후 집안이 파산당하여 화신백화점/광산 등에서 일을 하였다.

- 1946년 남조선미술동맹 서기장

- 1949년 제 1회 국전 추천작가

- 1952년 조선미술가동맹 평안북도 지부장

- 1958년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 지도원

- 김만형은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비교적 폭이 넓고 정서가 깊은 풍경화들을 많이 창작하였다. 그는 사상적으로 좌익을 신봉한 화가로서 풍경화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 웅장한 느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25-328쪽 참조)

- 1984년 작고


 

작품번호: 11

작 가: 한상익

제 목: 련주담 가을

크 기: 36 x 60

제 작: 1967년​

한상익 - 련주담 가을 (36 x 60)

 

련주담 가을 - 캔버스 뒷면

 

 

련주담 가을 - 캔버스 뒷면 자필서명과 인장

 

한상익 (1917 - 1997) 약력

-1917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

-1939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 1943년 군사훈련교관과 모욕을 당한후 중퇴

-1943년 선전에서 “청년”으로 입선, 1944년 선전에서 “가을의 작물”로 특선

-1947년 제1차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단강도”로 김일성표창장 수상

-1950-1955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55-1971년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와 강원도 현역미술가

-1970년 53세에 결혼한 한상익은 안해의 도움으로 이후 10여년 간 200여점에 달하는 금강산과 원산의 이름있는 곳들을 낱낱이 그린 주옥같은 작품들은 한상익의 창작을 총화자울 수 있는 귀중하고 의의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64쪽 인용)

-1991년 4월 만수대창작사를 방문한 김일성은 한상익의 창작을 극찬한 교시를 하였다.

-1992년 국제문화회관에서 생애를 총화짓는다고 말할 수 있는 개인미술전람회를 여는 날 안해와 14살난 딸애는 허리까지 굽기 시작한 한상익의 주름잡힌 얼굴이 때없이 밝아지고 20년은 더 젊어보여 졌다고 기뻐 말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64쪽 인용)

-북한화단에서 유별난 생활경로와 특이한 창작적 개성으로 하여 성과작도 많았고, 실패작도 많았던 한상익은 추억깊은 화가로, 지울수 없는 화가로 인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p361~365쪽 참조)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 화랑에서 최고가의 북한 화가작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1997년 작고

 

 


 

작품번호: 12

작 가: 윤자선

제 목: 꽃

크 기: 50 x 34

제 작: 1956년​

윤자선 - 꽃 (50 x 34)

 

윤자선 (1918-작고) 약력

-서울시 종로구에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8년 제2 공립고등보통학교 ,1942년 일본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제19회 선전(鮮展)에서 “자화상”으로 입선

-1945년 해방이후 숙명여중, 경기상업, 경동중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했다.

-한국전쟁시기에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전후에는 평양건설대학 미술교원으로 창작과 미술교육을 하였다.

-윤자선은 기초가 튼튼하고 색채형상기량이 일정한 높이에 있었기 때문에 그림이 조형성이 있고 미술적으로 수준이 있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75-376쪽 참조)

-작고년도 미상

 

 

 


 

작품번호: 13

작 가: 최창식

제 목: 금강산의 겨울

크 기: 52 x 40

제 작: 1992년​

최창식 - 금강산의 겨울 (52 x 40)

 

최창식 (1920 - 2003) 약력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출생.

-예산에서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의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한국전쟁 전까지 예산과 서울에서 미술교사로 있었다.

-1949년 국전 1회에 아들 최광진 이름으로 “석고가 있는 정물”로 특선.

-한국전쟁때 의용군에 입대, 1954년 이후 철도미술창작사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최창식은 길진섭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여러 작품을 공동으로 창작하였다.

-그는 일찍기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년도미상).

-최창식은 깨끗한 창작적 량심을 가지고 나라의 미술발전을 위한 미술전람회에 거의 빠짐없이 작품을 내놓았다. 전람회에 꾸준한 창작적 열정을 가지고 형상성 있는 작품을 내놓은 그의 미술가로서의 의무와 책임감을 언제나 잊지 않고 성실히 수행해 온 창작가적 량심의 발현이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97쪽 인용)

-2003년 작고

 

 


 

작품번호: 14

작 가: 정온녀

제 목: 부벽루

크 기: 45 x 33

제 작: 1980년​

정온녀 - 부벽루 (45 x 33)

 

정온녀 (1920-2005) 약력

-1920년 강원도 평강군에서 출생

-1940년 동경여자전문학교시절 선전19회에 “여인좌상”으로 입선

-1941년 동경여자미술 전문학교, 1943년 일본대학 미술학부 유화과를 졸업했다.

-대학졸업 후 서울에서 경성일보기자, 중학교 미술교사로 있었다.

-이 시기에 미인대회에 출전하여 1등 없는 2등에 당선되어 미모를 과시했다.

-1951년 한국전쟁 시기에 북한 내각사무국 최고사령부에서 미술창작활동을 했다.

-1955-1968년 국가미술전람회에 11회에 걸쳐 12점이 입선/입상되었다.

-1994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국보작품으로 등록된 8점을 포함한 70여점이 전시 되었다.

-정온녀는 인물주제화가지만 풍경화창작에도 특기를 가지고 있다. 보기 드문 활달한 필치로 대상의 모양과 색조에 맞게 한붓한붓 놓은 것이 자그마한 부족점도 없이 정확할 뿐 아니라 그 모든 필치에 화가의 감정이 그대로 슴배여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93쪽 인용)

-2005년 작고

 

 


 

작품번호: 15

작 가: 김민구

제 목: 고향집여름

크 기: 44 x 36

제 작: 미 상

김민구 - 고향집여름 (44 x 36)

 

김민구 (1922-작고) 약력

-강원도 원산시에서 출생

-1937년 단신으로 일본 미술학교에서 1년간 훈련과정을 거쳐 입학했다.

-1941년 선전(鮮展) 20회에 입선하는 등 1944년까지 8점의 작품을 완성하여 선전(鮮展)에 출품했다.

-1945년 일본에 강제로 징용되어 북해도 광산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다.

-종전 후 귀국하여 조선미술가동맹 강원도위원회 위원장으로 18년간 활동했다.

-195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초원”으로 1등상 수상

-1970년에 그린 “백두산천지”는 미술작품에서 처음으로 백두산천지의 진경이 전경화식으로 전개된 구도속에 펼쳐지게 되었다.

-김민구는 황헌영과 더불어 풍경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미술가이며, 풍경화가로서 독자적인 개성이 있는 우수한 미술가이다. 그의 그림은 폭이 크고 무게가 있으며 깊이 있는 남아다운 성격이 뚜렷하다고 인정받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417-419쪽 참조)

- 작고년도 미상


 

작품번호: 16

작 가: 구본영

제 목: 련주담

크 기: 33 x 44

제 작: 1991년​

구본영 - 련주담 (33 x 44)

 

구본영 (1922-1993) 약력

-서울시 통인정에서 출생하여 개성에서 송도고등보통학교를 졸업

-서양화가 오지호의 집을 자주 찾아가 그림지도를 받았다.

-1943년 일본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학비 때문에 1년 만에 중퇴

-해방후 개성에서 공립중학교 교원, 서울공업중학교 교원

-한국전쟁시기에 월북하여 예술단 미술가, 평양수예연구소 미술강사로 있으면서 후배양성사업을 했다. 후일 이들 제자들이 북한 수예가들의 핵심들이 되었다.

-1963-1982년 까지 조선미술가동맹 평안북도 위원장

-1970-1984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72년 이후 30년간 전공하던 유화를 버리고 조선화 화가로 전환하였고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1982년 이후 구본영은 평안북도미술창작사 창작가로 생애 마지막 시기까지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하였다.

-1993년 작고


 

작품번호: 17

작 가: 리건영

제 목: 김일성꽃

크 기: 24 x 51

제 작: 1967년​

리건영 - 김일성꽃 (24 x 51)
김일성꽃 - 사진과 설명서

 

리건영 (1922-작고) 약력

-경기도 수원군에서 청전 이상범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35년 서울 청운공립보통학교를 졸업. 경신중학교에 입학후 3학년 중퇴

-1939-1944년까지 6년간 선전(鮮展)에서 8점이 입선되었다.

-1946년 인천 박문여자중학교 미술교원, 인천시립극단관장, 서울에서 미술교원으로 있다가 좌익활동사건으로 1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49 48점을 가지고 개인전을 가졌으며, 1953년에 월북하였다.

-이후 건축미술제작소 미술가로,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지도원으로 평양과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대표작으로 서두수의 류벌”,“꽃봉오리들”, 그리고 극장면막 등이 있다.

-리건영은 평양대극장이 건설된 후 그린 첫 면막(1960)과 해주도립극장의 면막형상에서 커다란 창작성과를 거두었다.

-리건영은 아동들과 특히 미인도를 그리는데서 특기를 보였으며, 출판미술에도 관심을 두고 삽화, 그림책들을 많이 그렸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804쪽 인용)

- 작고년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