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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전시 판매전

(종료) 2024년 제71회 전시판매전 (11/11-11/24)

1. 판매작품 : 특별 가격 작품 1점, 북한유화 13점, 조선화 24점

2. 전시·판매기간 : 2024년 11월 11일 ~ 2024년 11월 24일 (2주간)

3. 구매문의 : 010-4432-4676

4. Email : rheo343@naver.com


       특별 가격 작품                                                                                                                                              

작품번호 : 9100

제목 : Tibet Mandala Painting

크기 : 58.5x79.5cm

제작 : 16세기 Tibet에서 제작된 불화

가격 :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 절반상(上)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 절반하(下)

 

Tibet Mandala Painting (58.5x79.5) : 중앙원형

특징

비단화폭에 부처와 각종 불교문양을 채색형상화한 후, 영구보존을 위해 불화전체를 금()물로 입혔다.

 

소장 경위

소장가가 2000년 당시 직장동료인 인도출신 xxxx와 물물교환 형태로 고가로 매입한 불화이다. 본 불화를 매도한 인도사람은 인도에서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50여개의 왕국의 왕족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은행 Royal Bank of Scotland 홍콩에서 근무한 중견간부였다.

 

Tibet 불화 작품 설명

제한된 좁은 화폭에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부처를 기하학적으로 정밀하게 그렸고, 상하좌우가 서로 대칭되도록 고난도의 구도로 구성된 것이 놀랍도록 신기할 정도다. 부처의 형상뿐만 아니라 불화 전체에 그려진 문양 자체도 너무 정교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위치에 배열되어 불화 구도를 완벽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불화 중앙에 네 겹으로 된 원형 중 제일 안쪽 원형 안에 그려진 모든 형상은 본 불화의 핵심적인 주제와 관련된 불경을 이미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형 외부와 내부의 부처형상이 다르고, 특히 원형 중앙에 있는 정사각형의 내부와 바깥쪽 부처와 문양도 서로 다른 형상임을 알 수 있다. 본 불화의 제일 중앙에 자리 잡은 정사각형 중심에 그려진 십자가 모양의 문양 등 불화를 구성하고 있는 전체적인 내용과 해석에 대해서는 불화를 전공한 학자들의 전문적인 의견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신앙적인 헌신으로만 본 불화를 완성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16세기에 Tibet에서 이러한 고난도의 훌륭한 불화를 정밀하게 창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보물 같은 작품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북한 유화 13점

1. 작품번호 : 2004

작가 : 강호

제목 : 교외에서 / 수채화

크기 : 29x41

제작 : 1957

가격 : 

강호 - 교외에서 (29 x 41)
교외에서 됫면 - 인민예술가 장일남 감정서

 

 

강호 (1908-1984) 약력

북한발행(1999) 조선력대미술가편람(260~263) 4쪽 분량에 걸쳐 강호 약력서를 게재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8년 :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출생.

-1921년(13세) : 일본 경도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심부름꾼,우유와 신문배달 등 고학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1927년(19세) : 서울에서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동맹’에 가맹하여 김복진에 이어 미술부와 영화부를 책임지고 사업.

-1932년(24세) : 월간잡지 ‘우리 동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38년(30세) :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1942년까지 4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46년(38세) : ‘북조선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

-1946-1950년 : 한국전쟁 직전까지 남조선연극동맹서기장

-1950-1980년 : 평양연극영화대학과 평양미술대학 예술학부 교수학직을 수여받고(1961년), 학부장, 강좌장을 지냈다.

-1965년 :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영화미술 ‘생의 노래’로 2등상을 수상.

 

* '생의 노래'는 강호의 풍부한 창작경험과 예술적 분석력, 높은 조형적 창작능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1쪽 인용)

 

* 강호는 북한정권수립 초기 소위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북한무대 및 영화미술의 선각자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후비양성, 도서집필사업을 통하여 북한미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3쪽 인용)

 

* 현재 북한의 수채화를 대표하는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제자이며, 공훈예술가 강신범과 강신일이 강호의 아들이다.

 

*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채화 ‘교외에서’ 그림 뒷면에 자필로 ‘강호의 진품임’을 증명하는 자필확인서를 써준 경위는 다음과 같다.

북한창작사가 해외그림판매를 위해 북한화가들을 개별 방문하여 수집한 북한작품 중에서 강호의 그림을 발견한 장일남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어데서 선생님의 그림을 구하셨습네까" 하면서 해외로 팔려나간 것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면서 자필확인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2. 작품번호 : 1026

작가 : 김광룡

제목 : 이선폭포

크기 : 91x65

제작 : 2001

가격 : 

 

김광룡 (1949 - 작고) 약력

-1949년 평양시에서 출생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를 졸업

-졸업이후 모교에서 교원으로 창작활동을 계속하다가, 숙환으로 2004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 작품번호 : 1048

작가 : 김상훈

제목 : 가을계곡

크기 : 76x53

제작 : 2001

가격 : 

 

김상훈 (1933 - 2017) 약력

-1933년 3월 평안북도 동창군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졸업 후 교원, 강좌장으로 활동​​하였다.

-1961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여성영웅광부'로 2등상 수상

-1963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생의 노래'로 2등상 수상

-196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긍지'로 2등상 수상

-1982년 부교수

-1989년 학사학위

-1991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13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1996년 중국 연변에서 40여점을 가지고 미술작품전시회를 가졌다

-1997년 인민예술가

-2017년 작고


4. 작품번호 : 1145

작가 : 리정찬

제목 : 바다갈매기

크기 : 93x62

제작 : 2007

가격 : 

 

 

리정찬 (1948 - ) 약력

-1948년 평양에서 출생

-197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대학졸업 후 백호창작사에서 25년간 창작생활을 하면서 여러 형식의 미술창작사업에 관여했다.

-1997년 공훈예술가

 

* 리률선, 박진수로부터 미술교육을 받았고, 전통에 기초하면서 강한 색의 대조, 명암처리로 필체가 활달하고 색채형상을 다양하게 구사한 특기를 가지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60쪽 인용)


5. 작품번호 : 1153

작가 : 리종원

제목 : 장미

크기 : 65x52

제작 : 2001

가격 : 

 

리종원 (1934 - ) 약력

 

-1934년 황해북도 연탄군에서 출생

-1963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1970-1988년 만수대창작사 벽화창작단 단장

-평양지하철 1, 2, 3계단 벽화창작사업을 지도한 공로로 공훈예술가 수여받음

-인민문화궁전, 김일성경기장, 4.25 문화회관, 만수대예술극장 등 벽화작품들을 창작조직과 형상지도를 맡아 훌륭히 수행했다.

-1974-1988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현재 평양미술대학 강좌장, 창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 리종원의 벽화는 전례없는 규모와 형상의 밀도로 일찍이 보지 못한 굴지의 대형벽화를 창조하여 주체미술의 찬란한 전성기를 펼치는데 공헌하였으며,현대 벽화예술분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인정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82쪽 인용)


6. 작품번호 : 1190

작가 : 박래천

제목 : 련주담

크기 : 196x79

제작 : 2001

가격 : 

 

 

박래천 (1936 - 2017) 약력

 

-1936년 11월 전라북도 금산군에서 출생하여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고급중학교 졸업

-1963년 평양미술대학졸업 후 40여년간 출판화 학부교원, 강좌장으로 계속활동하였다.

-196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모든 지역 모든 전선'으로 입상

-1985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0만정보의 날바다'로 입상

-198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기적소리'로 입상(대표작품)

-1991년 공훈예술가

-1994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탄광에 더 많은 갱목을'로 입상

-1998년 인민예술가

-2017년 작고

 

* 박래천의 유화는 구도적으로는 대각선상에 기본 묘사 대상을 설정하고 검붉은 색의 강렬한 색계조로 직관적 표현력을 강조해 준다. 박래천은 2000년 전후 북한 최초로 유화에 몰골기법을 적용하여 독창적인 조형기법을 완성하여 북한 미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박래천은 몰골화 기법을 유화에 적용하여 자기만의 새로운 화법으로 독창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북한 최고의 명화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 35년에 걸치는 후대 교육사업을 통하여 재능 있는 많은 선전화가들을 키워내는데 기여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17쪽 인용)


7. 작품번호 : 1243

작가 : 유흥섭

제목 : 압록강

크기 : 66x48

제작 : 1998

가격 : 

 

 

유흥섭 (1934 - ) 약력

 

-1934년 함경북도 라진시에서 출생

-1955년-1960년 평양미술대학 무대미술학부 졸업

-1963년 조선인민군협주단 미술가, 창작부 미술실장으로 30여년간 복무하면서 주로 가극 무대미술 그리고 일련의 주제미술작품들을 창작하였다.

-1970년 '조선의 예술은 살아있소'(262x174cm) 작품은 김정일위원장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74쪽 인용)

-1973년 공훈예술가 

-1982년 인민예술가

 

* 유흥섭은 무대미술은 물론 유화, 조선화 등 회화분야에서도 높은 소묘력과 조형형상능력을 소유한 다재다능한 미술가이다.


8. 작품번호 : 1278

작가 : 정영화

제목 : 구월산가을

크기 : 160x109

제작 : 2001

가격 : 

 

 

정영화 (1948 - ) 약력

 

-1948년 11월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출생하여 강원도 평강군에서 고급중학교 졸업

-1977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졸업 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단장으로 활동​

-1983년 전국선전화전람회 1등상

-1988년 국제미술전람회 2등상 

-198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아침'으로 1등상

-198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저녁'으로 2등상

-1991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서화전시회에서 북측대표로 참석

-1992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땅과 전사'로 1등상

-1992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1993년 전국선전화전람회에서 1등상

-1994년 전국선전화전람회에서 금메달

-1999년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 그의 그림은 농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상 깊은 생활의 한 순간을 전형적인 환경과 생활세부에 담아 집중시켜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깊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63-765쪽 인용)

 

* 현재 한국에서 인민예술가 박래천과 함께 가장 높은 가격으로 매매되는 화가이다.


9. 작품번호 : 1311

작가 : 최동수

제목 : 금강산의 봄

크기 : 117x79

제작 : 2000

가격 : 

 

 

최동수 (1937 - 2013) 약력

 

-1937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48년 함경북도 아동미술전람회에서 특등상을 수상

-1954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에 입학.

-1959-1973년 졸업후 조선우표사,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1974-1977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1977-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부위원장

-1978년 공훈예술가

-1983-2001년 문화예술부 미술지도국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업미술지도국장

-2001년 이후 송화미술원에서 활동했다.

-2013년 작고


10. 작품번호 : 1318

작가 : 최원수

제목 : 련주담

크기 : 109x79

제작 : 1998

가격 : 

 

최원수 (1934 - 1998) 약력

-193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에 입학,

-1965년 그의 졸업작품이자 처녀작 '영옥이네 사형제'로 국가미술전람회 3등으로 입상하면서 천재미술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대학졸업 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평양미술대학교원, 강좌장, 학장으로 은퇴했다.

-1998년 작고

 

* 1976-1995년 북한에서 유일한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에서 20년 동안 학장으로 재직한 북한 최고의 미술교육지도자로, 그리고 화가로써 북한미술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그의 유화색감은 강렬한 색채를 즐겨 사용하여 강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성과있는 작품을 형상화하였으며, 작품수가 많지 않아 소수의 작품만이 소개되고 있다.

 

* 평양학생소년궁전 : 북한 공산당 고위급 자제들만을 위한 특수목적학교로 알려져 있다.


11. 작품번호 : 1357

작가 : 홍부운

제목 : 해칠보

크기 : 58x47

제작 : 1989

가격 : 

 

홍부운 (1941-1989) 약력

-1941년 함경남도 신포시에서 출생

-1957년 평양미술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여, 1964년 회화학부 유채과를 졸업.

-이후 중앙미술창작사와 만수대창작사에서 20여년간 창작생활을 했다.

-1984년 공훈예술가

-대표작 해칠보 형제바위(1987년)는 깊이있는 색조, 능란한 필치로 하여 창작예술적 기량을 충분히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9년 4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불운한 예술가이다.

 

 

 

 


12. 작품번호 : 1363

작가 : 홍성철

제목 : 련주담

크기 : 55x73

제작 : 1982

가격 : 

 

홍성철 (1928 - 1995) 약력

-1928년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출생

-1948년 평양미술대학 입학, 1950년 졸업

-1974년 공훈예술가 

-1979년 인민예술가

-1989년 김일성상 수상

-1990년 인민예술가 로익화와 함께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2인 미술전람회를 가졌다.

-1995년 작고

 

* 홍성철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위원, 집행위원, 문예총 중앙위원회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종합심의위원으로 있었다.

 


13. 작품번호 : 1368

작가 : 홍종원

제목 : 개성관덕정

크기 : 130x89

제작 : 2002

가격 : 

 

 

홍종원 (1928 - 2004) 약력

-1928년 12월 경기도 인천시에서 출생

-1948년 홍익대학 유채학부 입학​​

-한국전쟁 당시 홍익대학 미술학부에 같은 학생이였던 아내 변옥림과 함께 월북

-2004년 작고

 

* 그는 처녀작 '돌다리자국'을 그려 북한 전승기념관에 전시되는 영광을 얻었고, 현재 김일성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김일성초상화를 그려 북한 최초로 김일성을 형상화하였다.

 

*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에 수차에 거쳐 출품하여 수상하였으며, 수십 점이 조선미술박물관과 조선력사박물관에 전시/보관되어 있다.

 

* 1993년 9월 북한미술박물관에서 북한 최초로 성대하게 가족미술전람회를 열었다.


조선화 24점

1. 작품번호 : 2010

작가 : 김린권

제목 : 노안도

크기 : 68x137

제작 : 1995

가격 : 

 

김린권 (1925 - 2004) 약력

 

-1925년 함경남도 인흥군에서 출생

-1938년부터 10년간 흥남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학교에 입학

-1951년 구소련 레닌그라드 레핀미술대학에서 6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문화선전성 지도원

-1964년-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영화 및 미술분과 위원장

-1965년 정종여와 함께 조선미술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1978년 공훈예술가

-1983년-1994년 문학예술작품 심사위원

-2004년 작고할 때까지 송화미술원 서기장으로 있었다.

-2004년 작고


2. 작품번호 : 2013

작가 : 김병희

제목 : 금강산 온정령

크기 : 112x52

제작 : 미 상

가격 : 

 

김병희 (1939-1993) 약력

-1939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1962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과에 입학한 그 해에 '오이밭의 할아버지'를 그려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66년 졸업 후 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임명되었다.

-1982년 만수대창작사에서 미술가, 창작실장으로 창작생활을 하였다.

-1993년 작고

 

* 김병희는 리석호에게 발탁되어 리석호 화실에서 4년간 엄격한 스승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림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 김병희의 대표작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은 일본 조총련의장 한덕수가 소장하고 있으며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2쪽 인용)

* 2중 로력영웅 정영만은 김병희에 대해 “김병희는 조선화의 모든 화법에 정통하고 있는 미술가이며 눈에 크게 나타나지 않으나 실지에 있어서는 진폭이 큰 미술가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2쪽 인용)

* 김병희는 불치의 병에 걸린 순간부터 초인간적인 힘으로 100여점에 달하는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해내었다.


3. 작품번호 : 2018

작가 : 김상직

제목 : 소나무산수 8폭연결

크기 : 380x133

제작 : 1998

가격 : 

 

 

김상직 (1934 - 작고) 약력

 

-1934년 4월 함경북도 라진군에서 출생

-로동을 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20대 때 유화 12점을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

-1961년 27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벽화 수업을 받았고, 대학시절 리석호로부터 다년간 개별지도를 받았으며 1965년에 졸업

-대학졸업 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조선미술가동맹, 평양미술대학교원과 강좌장,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생활과 후비육성사업을 하였다.

-1977년 벽화 '산전막에 남긴 사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수상

-1996년 새로 발족한 송화미술원 원장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 벽화창작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활동은 조선화창작으로 그의 전성기를 보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69쪽 인용)


4. 작품번호 : 2022

작가 : 김성근

제목 : 바다파도

크기 : 106x57

제작 : 1999

가격 : 

 

김성근 (1945 - ) 약력

 

-1945년 7월 평안북도 천마군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받고 기계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했으며 군복무를 거쳐 1971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72-1975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1986년까지 만수대창작사에서 풍경을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였으나

-1987년(42세)부터 파도 그림을 맡아 주동적으로 형상화하여 파도전문가가 되었다. 인민예술가로 김파도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1990년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수채화경연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91년 공훈예술가

-1993년 그의 대표작 '해금강의 파도(18mx8m)'를 제작했다.

-1994년 김정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대걸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8년 인민예술가

 

* 김성근은 바다를 형상화하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며 변하는 바다, 격랑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파도, 폭풍을 일으키며 광란하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가는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32쪽 인용)


5. 작품번호 : 2027

작가 : 김성호

제목 : 보통강 겨울

크기 : 96x50

제작 : 2000

가격 : 

 

 

김성호 (1944- ) 약력

-1944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69-1973년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유화를 그렸고, 그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조선화를 그렸다.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여점이 입상(금메달과 1~3등) 되었다.

-1989년 공훈예술가 

-1996년 인민예술가 

 

* 김성호는 풍경화에서 추구한 정서는 매우 감성적이다. 그는 주로 아침과 흐린 날 등의 시간적 느낌에서 오는 독특한 정서를 통하여 자연의 미를 부각시키고, 격이 있고 운치가 있는 고상한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또한 그의 풍경화들에는 짙은 향토적 정서가 깔려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21쪽 인용)


6. 작품번호 : 2034

작가 : 김춘전

제목 : 선죽교

크기 : 87x59

제작 : 1998

가격 : 

 

김춘전 (1941 - 2017) 약력

 

-1941년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출생

-1964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 졸업 후 만수대창작사 창작가

-1974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단장

-1974년 공훈예술가

-1985년 인민예술가

-1985년 뽈스카에서 진행된 국제반전미술전람회에서 특별상과 금메달

-1992년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길에서'로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1996년 '사색'으로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2017년 작고

 

* 김춘전은 다른 조선화 화가들처럼 작품을 많이 그리지 못한다. 그의 작품은 많은 것이 생략된 가운데 그려진 돌과 바위, 나무와 풀 한포기도 깊은 의미가 담겨지게 하려는 것이 확연히 알려진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91쪽 인용)


7. 작품번호 : 2065

작가 : 리문길

제목 : 만물상 8폭연결

크기 : 350x132

제작 : 1999

가격 : 

 

리문길 (1953- ) 약력

-1953년 청진시에서 출생

-197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9~2001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창작가

-1997년 공훈예술가

-2002년 이후 문예총중앙위원회 창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리문길은 철학적 깊이가 있고 정서가 있는 조선화들을 창작한 재능있는 창작가이다. 시적이고 필치가 힘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하여 재능있는 창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8. 작품번호 : 2067

작가 : 리석호

제목 : 고향집

크기 : 59x48

제작 : 1966

가격 : 

 

리석호 (1904-1971) 약력

-號는 일관으로 경기도 안성군에서 서자출신으로 출생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21세인 1925년에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안중식의 서화협회에 들어갔다.

-1928년 이당 김은호는 자기의 개인화숙에 그를 옮겨놓고 전문적인 지도를 했다.

-1927-1929 선전(鮮展) 서예부 입선

-1934-1944 선전(鮮展) 동양화부 입선 8회

-1950년 조선미술동맹에 가담 후 월북

-1951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1956년, 1959년, 1960년에 월남과 구소련을 조선문화대표단으로 방문

-195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국화'로 1등상 수상

-195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해바라기'로 1등상 수상

-1957년 김일성주석 표창장

-1958년 작품 '청봉'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

-1959-1963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1971년 작고


9. 작품번호 : 2081

작가 : 문화춘

제목 : 가을계곡

크기 : 79x51

제작 : 1999

가격 :

 

문화춘 (1938 - 2019) 약력

 

-193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출생하여 해방후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문하연은 평양음악대학 초대 학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한 집안이였다.

-문화춘은 17세인 1954년에 평양미술대학 예비과(2년), 본과(4년)을 수료하고, 1960년에 졸업하여 모교의 교원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이후 철도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창작실장

-1971년 그의 대표작 '내금강의 아침(90x175cm)'으로 김정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1987년 공훈예술가

-1989년 1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2019년 작고


10. 작품번호 : 2089

작가 : 방성희

제목 : 팔만대장경 보존소

크기 : 68x48

제작 : 2000

가격 : 

 

 

방성희 (1969- ) 약력

-1969년 평양시 서성구에서 출생

-1989년 평양공예전문학교 공예과 졸업

-1989-1996년 철도미술창작사 미술가로 활동

-1997-2000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2001년부터 문예총중앙위원회 창작가(1급)

-2009년 공훈예술가


11. 작품번호 : 2091

작가 : 방인수

제목 : 내살던 정든집

크기 : 47x67

제작 : 1992

가격 : 

 

 

방인수 (1952 - ) 약력

-1952년 평양시에서 출생

-1974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설학부’ 졸업

-1975년 철도미술창작가,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현재 송화미술원에서 활동

-국가미술전람회에 여러 점을 입선/수상하였으며, 주로 외국 미술전시회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호평을 받은 작가로 광주 비엔날레 에도 출품했다.

-1999년 중국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1999년 미국 워싱톤에서 30여점을 가지고 개인전시회를 가졌다.

- '명화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12. 작품번호 : 2095

작가 : 방학주

제목 : 봄맞이 춤

크기 : 52x119

제작 : 1996

가격 : 

 

방학주 (1943 - ) 약력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56-1960 함경북도 도미술가동맹 야간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68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를 졸업

-1968-1987년까지 함경북도 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였고,

-1987년 이후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공훈예술가

-1995년 인민예술가

 

*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수법으로 그림을 수예품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형상화 하고, 특히 인물화와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그의 작품 '참대숲'은 남한/해외에서 인기가 높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710-711쪽 인용)


13. 작품번호 : 2017

작가 : 선우영

제목 : 금강산 석가봉

크기 : 130x65

제작 : 2000

가격 : 

 

선우영 (1946-2009) 약력

 

-1946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 졸업

-1969-1972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1972-2009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2009년에 사망했다.

-198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장군님의 뜻을 안고'로 1등상 수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2009년 작고

 

*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특징은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의 묘사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의 생략과 같은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라고 선우영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8쪽 인용)

 

* 그가 창작한 ‘금강산석가봉’과 ‘범’은 세화기법으로 그린 조선화중에서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7쪽 인용)


14. 작품번호 : 2114

작가 : 송시엽

제목 : 여름나팔꽃

크기 : 40x131

제작 : 1999

가격 : 

 

송시엽 (1934 - ) 약력

 

-1934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출생

-1955-1959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59-1995년 국립미술출판사,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미술가로 창작활동을 하였다.

-1980년 공훈예술가

-2006년 인민예술가

-1995년 이후 송화미술원 서기장

 

* 송시엽은 청소년잡지들과 여러 출판물에 600여건의 만화를 그렸으며 그림책 3권을 그려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1967년부터 선전화 창작을 전문으로 하면서 120여점의 전투적이며 호소성 있는 선전화를 그렸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81쪽 인용)


15. 작품번호 : 2202

작가 : 심덕규

제목 : 내금강계곡

크기 : 129x64

제작 : 2000

가격 : 

 

심덕규 (1945-2010) 약력

-1945년 양강도 신계읍에서 출생

-1968~1972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2.16 예술교육출판사 창작가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주체의 태양'으로 금메달, '조선의 목단'으로 2등상, '복받은 세대'로 1등상을 수상했다.


16. 작품번호 : 2220

작가 : 정영만

제목 : 금강산 여름

크기 : 200x77

제작 : 1995

가격 : 

 

정영만 (1938 - 1999) 약력

1938년 강원도 원산시 명석동 출생

1962년 평양미술대 졸업

1966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1974년 공훈예술가 

1978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2.16장작실장

1979년 인민예술가

1989년 만수대창작사 창작부사장, 김일성상 수상

1990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91년 로력영웅칭호 수여

1997년 2중로력영웅칭호 수여

1999년 6월 17일 작고

 

* 1973년부터 15년 동안 만수대창작사 창작실에서 정영만과 함께 창작생활을 했던 선우영(인민예술가, 2009년 작고)은 정영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하고 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들의 특징은 물론 개별적 바위들의 생김새 그리고 동석동골 안으로 흘러드는 아침 안개로부터 관음련봉 사이를 감돌아 질주하는 구름안개에 이르기까지 금강산의 기상과 특징들을 창작한 정영만 동지의 금강산 작품들은 그 생동성과 진실성으로 하여 우리들을 탄복하게 하였다. 참으로 정영만동지의 자연에 대한 목적 지향적이고 사색적인 관찰은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기풍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정영만과 그의 창작‘, 평양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0년 간행, 131-133쪽에서 인용)

 


17. 작품번호 : 2204

작가 : 안상목

제목 : 보현사

크기 : 40x41

제작 : 미 상

가격 : 

 

 

안상목 (1928-1990) 약력

-1928년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출생

-1946년 서울 경동공립중학교 졸업

-1946-1950년 6.25전쟁 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양화과 졸업

-1950-1953년 북한인민군 사단정치부 서기로 미술직관원작을 하였다.

-1953-1957년 평양미술대학 유채과 졸업

-1957-1959년 과학원고고학 및 민속연구소 연구생

-1963-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평안남도 현역미술가

-1982년 이후 남포미술창작사 미술가

-1990년 작고

 

* 안상목의 풍경화들은 그 개개의 작품에 관통되어 있는 일반적인 공통성 , 즉 그가 아니고는 그릴 수 없는 고유성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나무와 바위, 물 들을 그리는데서 표현되고 있는 선과 점, 색들의 고유한 형상방법은 정통에 의거하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혁신되고 개성화 되어있다. (조성력대미술가편람 480-484쪽 인용)


18. 작품번호 : 2206

작가 : 안창국

제목 : 만물상가을

크기 : 176x96

제작 : 1995

가격 : 

 

 

청명(淸明) 안창국 (1954- ) 약력

-1954년 평양에서 출생

-197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졸업 후 평양미술대학 교원, 강좌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명화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100호 이상 대작이 많다.


19. 작품번호 : 2230

작가 : 정종여

제목 : 잉어 (표구)

크기 : 59x103

제작 : 1968

가격 : 

 

정종여 (1914-1984) 약력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둘째 아들로 출생, 호는 청계(靑谿)

- 1933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1940년 졸업

- 1936년~1944년 선전(鮮展)에서 입선 6회, 특선 2회

- 1951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1952년부터 10년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교원, 강좌장

- 1953년 이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 1955년 '굴진'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6년 '5월의 농촌'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8년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61년 이후부터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

- 1974년 공훈예술가

- 1982년 인민예술가

- 1978년 이후 동맹현역미술가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미술가로 활동

- 1984년 작고


20. 작품번호 : 2232

작가 : 정창모

제목 : 분계선의 옛집터

크기 : 62x113

제작 : 1999

가격 :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 정창모는 풍경화와 화조만을 그린 작가이다. 인물화나 동물화 등 다양하고 폭이 넓은 영역을 형상화했던 다재다능한 작가는 아니다. 북한 발행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서 언급한 대로 정창모의 작품 수가 '수천 점'에 이른다고 한다면, 작품의 품질과 희소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우려해서 편람 533쪽 하단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정창모의 다작을 옹호하고 있다.

'정창모는 자기의 창작을 인민에 대한 복무로 접근시켰다. 항간에 많이 류포되고 있는 정창모의 그림은 한 점이라도 더 인민들에게 주자는 그의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창작 태도의 결과이다.’

 

*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정창모 학사 논문집 소개

*  분계선의 옛 집터는 정창모의 학사논문집 민족의 자랑 조선화에 게재된 정창모의 대표적인 주제화작품이다. 상기 학위논문집은 2000 4 30일에 평양 ‘2.16예술교육출판사가 발행했으며, 논문심사위원으로 김재홍박사, 성두원박사, 인민예술가 김성민, 3인으로 되어 있다.

 

논문집에 게재된 정창모의 작품들은 분계선의 옛집터를 포함한 37점이 게재되어 있으며, 최초 본 작품제작년도는 1982년으로 되어 있다. 이를 1997년에 1차로, 1999년에 2차로 개작한 작품을 본 소장가가 소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창모 자신이 대표작이라고 선정한 37점 모두가 화조와 풍경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본 작품 분계선의 옛집터만이 유일하게 주제화로 게재된 작품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시골집 마당 우물 속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꽃나무가 정창모가 그리고 싶었던 주제였다면, 부서진 항아리가 의미하는 전쟁의 상흔이 인간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이를 극복해 주기를 정창모는 바라고 싶었을까.


21. 작품번호 : 2254

작가 : 차재렵

제목 : 외금강계곡

크기 : 94x83

제작 : 1991

가격 : 

 

 

차재렵 (1948- ) 약력

-1948년 평양시 중구역에서 출생

-1971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71~1986 조선력사박물관 미술가, 문화보존총국 미술창작실 창작가

-1987년 평양 중앙미술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창작가

-1989~1995년 중국과 러시아에서 창작활동

-2001년 공훈예술가


22. 작품번호 : 2259

작가 : 채경화

제목 : 고향의 시내가

크기 : 79x65

제작 : 1998

가격 : 

 

채경화 (1948-) 약력

- 1948년 7월 평안북도 운산군에서 출생

- 1966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와 '명화가 양성을 위한 특설학부' 졸업

- 1967-1978년 평양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 1979년 이후 철도미술창작사 창작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입선된 실력있는 화가이며, 조형적 안목이 매우 높아 화면구성에 특기를 가진 다양한 형상력을 가진 수준있는 화가이다.

 

* 명화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23. 작품번호 : 2289

작가 : 한명렬

제목 : 동백꽃

크기 : 135x70

제작 : 1995

가격 : 

북한증표

 

한명렬 (1926-작고) 약력

-1926년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출생

-1949년 홍익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하여 배운성, 유진명, 이응로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업을 이어가다 6.25 전쟁시기에 의용군으로 인민군대에 입대

-1954년 제대 후 신의주 법랑철기공장에서 미술가로 있었다.

-1963년 '첫 솜씨'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65년 '대동교복구'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75년 '내금강의 진주담'으로 김정일위원장 표창

-1976년부터 평안북도 미술창작사에 소환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하다가 송화미술원에서 말년을 보냈다.

-1988년 공훈예술가

-작고년도 미상


24. 작품번호 : 2303

작가 : 황영준

제목 : 금강산계곡

크기 : 158x59

제작 : 1998

가격 : 

 

 

황영준 (1919-2002) 약력

 

-1919년 충청남도 룡산군 계룡산에서 출생. 옥천군 보통학교졸업

-1931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후소회'에 입학하여 리석호, 김기창, 장우성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되어 전투부대에 파견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했다.

-1954-1960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6년 이후부터 평안남도 남포시 미술가동맹 위원장

-1966-198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 공훈예술가

-이후 송화미술원 고문을 지냈다.

-2002년 작고

 

* 황영준은 주요 묘사대상의 형태처리를 선묘위주로 하면서 짧은 선과 점으로 형상을 완결짓고 있으며, 색채처리에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형상방법을 가지고 있다.

 

* 황영준은 자기의 창작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30대에 싹이 트고, 40대에 대를 세우기 시작한 개성화가 끊임없는 자양분을 받아 50대에 비로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79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