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기 전시 판매전

(종료) 2023년 제47회 전시판매전 (12/11-12/24)

1. 판매작품 : 조선화 25점, 특별 가격 작품 1점

2. 전시·판매기간 : 2023년 12월 11일 ~ 12월 24일

3. 구매문의 : 010-4432-4676

4. Email : rheo343@naver.com


        특별 가격 작품                                                                                                                                            

작품번호 : 9005

작가 : 오지호

제목 : 지산동 생가 / 캔버스에 유화채색

크기 : 41x32

제작 : 1961년

가격 : 

오지호 - 지산동생가( 41x32 )
오지호 - 지산동생가( 41x32 ) : 좌하단 서명
오지호 - 지산동생가( 41x32 ) : 표구
오지호 - 지산동생가( 41x32 ) : 표구 뒷면

 

오지호 (1905-1982) 약력

-1905년 전남 화순군에서 8남매 중 막내인 4째 아들로 출생

-1926~1931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동경미술학교 재학 중인 1928~1931년 본명 오점수 이름으로 선전(鮮展)에 참여 연속 4년간 6작품이 입선되었다.

-1940년 일제의 창씨개명에 반대하여 개명하지 않아 “불령선인”으로 찍혀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되어 함경도 단천으로 피신하였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1949년 조선대학교에 미술과를 창설하였고, 6.25이후 1953년에 조선대학교에 복직하여 광주 지산동 초가집(본 작품)에 정착했다.

-국전참여(1959~1979년) : 추천작가(4회), 초대작가(7회), 심사위원(2회), 운영위원(4회)

-1973년 제 8회 대한민국문화훈장 모란장

-1977년 제 22회 대한민국예술원상

-1982년 9월 교통사고로 인해 12월에 생을 마감했다.

-2002년 문화훈장 금관장 추서

 

* 1985년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 34점을 기증하여 유작전을 개최했다.

* 그의 두 아들이 중견화가인 오승우와 오승윤이다

* 두산백과사전 기록 : 한국 근현대 화단에서 인상주의 화풍의 대표작가로 우리나라 자연이 지닌 밝고 명랑한 풍광을 인상주의에 결합시켰다.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특유의 붓 터치와 미묘하게 변화하는 색감으로 한국적 풍토에 맞는 인상주의 미학을 수립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작가 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

 


조선화 25점

 

작품번호 : 2002

작가 : 강신범

제목 : 을밀대겨울

크기 : 140x79

제작 : 1998

가격 : 

강신범 - 을밀대겨울 ( 140x79 )
강신범 - 을밀대겨울 ( 140x79 ) : 낙관

 

강신범 (1944-2005) 약력

-1944년 서울시 돈암정에서 유명한 원로화가 강호의 맏아들로 출생

-1959~1966년 평양미술대학 전문부와 학부과정을 마쳤다.

-1966~1973년 중앙미술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미술가

-1974년부터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197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잠복근무를 마치고'로 금메달 수상

-1992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풍년든 동파밭'으로 금메달 수상

-1992년 공훈예술가

-2005년 작고

 

* 강신범은 천성이 고지식하여 창작에서 기교적인 측면을 내세우려 하지 않으며 우연한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섬세하게, 생동감 있게 형상화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74-275쪽 인용)

 

* 1989년 제작한 강신범의 대표작 '2월의 을밀대' 작품을 처음 발표하고, 10년이 지난 1998년에 본 전시작품 '을밀대의 겨울' 이름으로 을밀대의 설경을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화면 절반을 차지하는 눈 덮인 나뭇가지들의 근경(近景)은 몰골기법을 이용하여 입체감 있게 표현되었으며, 눈 내리는 이름다운 설경이 별천지 같아 보인다.


작품번호 : 2011

작가 : 김린권

제목 : 기러기

크기 : 68x137

제작 : 1995

가격 : 

김린권 - 기러기 ( 68x137 )

 

김린권 (1925 - 2004) 약력

 

-1925년 함경남도 인흥군에서 출생

-1938년부터 10년간 흥남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학교에 입학

-1951년 구소련 레닌그라드 레핀미술대학에서 6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문화선전성 지도원

-1964년-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영화 및 미술분과 위원장

-1965년 정종여와 함께 조선미술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1978년 공훈예술가

-1983년-1994년 문학예술작품 심사위원

-2004년 작고할 때까지 송화미술원 서기장으로 있었다.

-2004년 작고


작품번호 : 2013

작가 : 김병희

제목 : 외금강 온정령

크기 : 112x52

제작 : 미상

가격 : 

김병희 - 외금강온정령 ( 112x52 )
김병희 - 외금강온정령 ( 112x52 ) : 낙관

 

김병희 (1939-1993) 약력

-1939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1962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과에 입학한 그 해에 '오이밭의 할아버지'를 그려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66년 졸업 후 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임명되었다.

-1982년 만수대창작사에서 미술가, 창작실장으로 창작생활을 하였다.

-1993년 작고

 

* 김병희는 리석호에게 발탁되어 리석호 화실에서 4년간 엄격한 스승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림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다.

* 김병희의 대표작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은 일본 조총련의장 한덕수가 소장하고 있으며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2쪽 인용)

* 2중 로력영웅 정영만은 김병희에 대해 “김병희는 조선화의 모든 화법에 정통하고 있는 미술가이며 눈에 크게 나타나지 않으나 실지에 있어서는 진폭이 큰 미술가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2쪽 인용)

* 김병희는 불치의 병에 걸린 순간부터 초인간적인 힘으로 100여점에 달하는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해내었다.


작품번호 : 2017

작가 : 김상직

제목 : 내가의 정서

크기 : 157x71

제작 : 1998

가격 : 

김상직 - 내가의정서 ( 157x71 )
김상직 - 내가의정서 ( 157x71 ) : 낙관

 

김상직 (1934 - 작고) 약력

 

-1934년 4월 함경북도 라진군에서 출생

-로동을 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20대 때 유화 12점을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

-1961년 27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벽화 수업을 받았고, 대학시절 리석호로부터 다년간 개별지도를 받았으며 1965년에 졸업

-대학졸업 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조선미술가동맹, 평양미술대학교원과 강좌장,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생활과 후비육성사업을 하였다.

-1977년 벽화 '산전막에 남긴 사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수상

-1996년 새로 발족한 송화미술원 원장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 벽화창작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활동은 조선화창작으로 그의 전성기를 보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69쪽 인용)


작품번호 : 2025

작가 : 김성근

제목 : 바다파도

크기 : 196x74

제작 : 1999

가격 :

김성근 - 바다파도 ( 196x74 )
김성근 - 바다파도 ( 196x74 ) : 낙관

 

김성근 (1945 - ) 약력

 

-1945년 7월 평안북도 천마군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받고 기계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했으며 군복무를 거쳐 1971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72-1975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1986년까지 그는 명확한 전문없이 자연을 이것 저것 제기 되는대로 그리다가

-1987년(42세)부터 '총석정의 파도'를 그려 파도그림을 주동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파도의 전문가로 '김파도'라고까지 불리우게 되었다.

-1990년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수채화경연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91년 공훈예술가

-1993년 그의 대표작 '해금강의 파도(18mx8m)'를 제작했다.

-1994년 김정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대걸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8년 인민예술가

 

* 김성근은 바다를 형상화하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며 변하는 바다, 격랑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파도, 폭풍을 일으키며 광란하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가는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32쪽 인용)


작품번호 : 2030

작가 : 김성호

제목 : 고향여름

크기 : 96x55

제작 : 2000

가격 : 

김성호 - 고향여름 ( 96x55 )
김성호 - 고향여름 ( 96x55 ) : 낙관

 

김성호 (1944- ) 약력

-1944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8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69-1973년 중앙미술창작사에서 유화를 그렸고, 그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에서 조선화를 그렸다.

-그는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0여점이 입상(금메달과 1~3등) 되었다.

-1989년에 공훈예술가 

-1996년에 인민예술가 

 

* 김성호는 풍경화에서 추구한 정서는 매우 감성적이다. 그는 주로 아침과 흐린 날 등의 시간적 느낌에서 오는 독특한 정서를 통하여 자연의 미를 부각시키고, 격이 있고 운치가 있는 고상한 형상을 창조하고 있다. 또한 그의 풍경화들에는 짙은 향토적 정서가 깔려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21쪽 인용)


작품번호 : 2032

작가 : 김승희

제목 : 금강산

크기 : 116x65

제작 : 1997

가격 : 

김승희 - 금강산 ( 116x65 )
김승희 - 금강산 ( 116x65 ) : 낙관

 

김승희 (1939- ) 약력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

-1957년 동경 조선중고등학교 졸업 후 동경 무사시노미술대학 유화과에 입학

-1959년 20세 생일날에 북한에 입국(귀국)하여 1개월 후 김일성을 접견

-1963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하고 중앙미술창작사,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미술가로 35년간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87년 '통일춤'으로 국가미술전람회 3등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 80여점의 조선화를 가지고 만수대창작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93년 '신천의 102 어린이'로 국가미술전람회 3등상

-1995년 인민예술가

 

* 김승희는 사색의 밀도가 높고 필치가 개성적이며 색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것 등 미술가로서 훌륭한 창작적 기질이 남김없이 표현되었다. 풍경화의 작품내용에 따라 형상방법들이 다양한 특징이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65쪽 인용)


작품번호 : 2035

작가 : 김춘전

제목 : 남강의 아침

크기 : 90x59

제작 : 1997

가격 : 

김춘전 - 남강의아침 ( 90x59 )
김춘전 - 남강의아침 ( 90x59 ) : 낙관

 

김춘전 (1941 - 2017) 약력

 

-1941년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출생

-1964년 평양미술대학 유화과 졸업 후 만수대창작사 창작가

-1974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단장

-1974년 공훈예술가

-1985년 인민예술가

-1985년 뽈스카에서 진행된 국제반전미술전람회에서 특별상과 금메달

-1992년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 길에서'로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1996년 '사색'으로 국가미술전람회 금메달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2017년 작고

 

* 김춘전은 다른 조선화 화가들처럼 작품을 많이 그리지 못한다. 그의 작품은 많은 것이 생략된 가운데 그려진 돌과 바위, 나무와 풀 한포기도 깊은 의미가 담겨지게 하려는 것이 확연히 알려진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691쪽 인용)


작품번호 : 2047

작가 : 리근화

제목 : 묘향산법왕봉

크기 : 159x59

제작 : 1991

가격 : 

리근화 - 묘향산법왕봉 ( 159x59 )
리근화 - 묘향산법왕봉 ( 159x59 ) : 낙관

 

리근화 (1929- ) 약력

 

-호는 석계(石溪)

-1929년 경기도 화성군에서 출생

-1961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1984년 공훈예술가 

-1996년 인민예술가

-1986~199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조선화분과 위원

-1996년 평양 송화미술원 창립요원

 

* 2003년 9월 20~21일 남쪽가족개별 상봉시, 만남의 징표로 병풍과 액자를 제작하여 “부모님 제사 때 사용하라”고 남쪽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한겨레신문 2003-09-21)


작품번호 : 2067

작가 : 리석호

제목 : 묵산수

크기 : 38x30

제작 : 1964

가격 : 

리석호 - 묵산수 ( 38x30 )
리석호 - 묵산수 ( 38x30 ) : 낙관

 

리석호 (1904-1971) 약력

-號는 일관으로 경기도 안성군에서 서자출신으로 출생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21세인 1925년에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안중식의 서화협회에 들어갔다.

-1928년 이당 김은호는 자기의 개인화숙에 그를 옮겨놓고 전문적인 지도를 했다.

-1927-1929 선전(鮮展) 서예부 입선

-1934-1944 선전(鮮展) 동양화부 입선 8회

-1950년 조선미술동맹에 가담 후 월북

-1951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1956년, 1959년, 1960년에 월남과 구소련을 조선문화대표단으로 방문

-195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국화'로 1등상 수상

-195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해바라기'로 1등상 수상

-1957년 김일성주석 표창장

-1958년 작품 '청봉'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

-1959-1963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1971년 작고


작품번호 : 2075

작가 : 리처흡

제목 : 칠보산 개심사

크기 : 117x65

제작 : 1985

가격 : 

리처흡 - 칠보산개심사 ( 117x65 )
리처흡 - 칠보산개심사 ( 117x65 ) : 낙관

리처흡 약력

-북한이 발행한 1989년도 '조선미술년감'(평양문예출판사) 340~342쪽에 게재된 '혁명적인 현실이 요구하는 미술작품을 창작하는데서 이룩한 빛나는 성과'의 논문저자가 '만수대창작사 사장 리처흡' 이름으로 게재되어 있다.

-리처흡은 문부성 부상을 지냈으며,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 리처흡은 1989년에는 만수대창작사 사장으로 재직한 것으로 상기 논문으로 확인되고 있다. 2중 로력영웅 인민예술가 정영만이 1989년부터 만수대창작사 창작 부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리처흡과 함께 사장과 부사장으로 근무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작품번호 : 2078

작가 : 리천일

제목 : 신평계곡

크기 : 128x60

제작 : 1999

가격 : 

리천일 - 신평계곡 ( 128x60 )
리천일 - 신평계곡 ( 128x60 ) : 낙관

 

리천일 (1953 - ) 약력

-1953년 황해남도 은천군에서 출생

-1974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입학

-1980년 졸업 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실(1급)

-198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꽃피는 신평마을'로 은메달

-199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과 2등상을 수차례 걸쳐 수상

-공훈예술가 (수여년도 미상)


작품번호 : 2086

작가 : 박대연

제목 : 정원에서

크기 : 75x125

제작 : 1988

가격 : 

박대연 - 정원에서 ( 75x125 )

 

 

박대연 (1955 - ) 약력

-1955년 7월 평양에서 출생

-1979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졸업

-1985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호박풍작이 든 일터에서'로 금메달

-1988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전선길의 밤'으로 1등상

-1989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김철의 숨결'로 금메달

-2005년 인민예술가

 

* 그는 열정적이고 강한 색채형상과 기백이 흘러넘치는 박력있는 필치,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구도설정 등은 그의 창작적 특기이다.

 


작품번호 : 2095

작가 : 방학주

제목 : 봄맞이춤

크기 : 52x119

제작 : 1996

가격 : 

방학주 - 봄맞이춤 ( 52x119 )

 

 

방학주 (1943 - ) 약력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56-1960 함경북도 도미술가동맹 야간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68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를 졸업

-1968-1987년까지 함경북도 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였고,

-1987년 이후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공훈예술가

-1995년 인민예술가

 

*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수법으로 그림을 수예품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형상화 하고, 특히 인물화와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그의 작품 '참대숲'은 남한/해외에서 인기가 높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710-711쪽 인용)


작품번호 : 2106

작가 : 선우영

제목 : 금강산가을

크기 : 130x65

제작 : 2000

가격 : 

선우영 - 금강산가을 ( 130x65 )
선우영 - 금강산가을 ( 130x65 ) : 낙관

 

선우영 (1946-2009) 약력

 

-1946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 졸업

-1969-1972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1972-2009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2009년에 사망했다.

-198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장군님의 뜻을 안고'로 1등상 수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특징은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의 묘사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의 생략과 같은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라고 선우영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8쪽 인용)


작품번호 : 2116

작가 : 송시엽

제목 : 호랑이

크기 : 81x150

제작 : 1996

가격 : 

송시엽 - 호랑이 ( 81x150 )

 

송시엽 (1934 - ) 약력

 

-1934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출생

-1955-1959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59-1995년 국립미술출판사,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미술가로 창작활동을 하였다.

-1980년 공훈예술가

-2006년 인민예술가

-1995년 이후 송화미술원 서기장

 

* 송시엽은 청소년잡지들과 여러 출판물에 600여건의 만화를 그렸으며 그림책 3권을 그려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1967년부터 선전화 창작을 전문으로 하면서 120여점의 전투적이며 호소성 있는 선전화를 그렸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81쪽 인용)


작품번호 : 2119

작가 : 심덕규

제목 : 내금강계곡

크기 : 95x65

제작 : 2000

가격 : 

심덕규 - 내금강계곡 ( 95x65 )
심덕규 - 내금강계곡 ( 95x65 ) : 낙관

 

심덕규 (1945-2010) 약력

 

-1945년 양강도 신계읍에서 출생

-1968~1972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2.16 예술교육출판사 창작가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주체의 태양'으로 금메달, '조선의 목단'으로 2등상, '복받은 세대'로 1등상을 수상했다.


작품번호 : 2204

작가 : 안상목

제목 : 보현사

크기 : 40x41

제작 : 미상

가격 : 

안상목 - 보현사 ( 40x41 )
안상목 - 보현사 ( 40x41 ) : 낙관

 

안상목 (1928-1990) 약력

-1928년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출생

-1946년 서울 경동공립중학교 졸업

-1946-1950년 6.25전쟁 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양화과 졸업

-1950-1953년 북한인민군 사단정치부 서기로 미술직관원작을 하였다.

-1953-1957년 평양미술대학 유채과 졸업

-1957-1959년 과학원고고학 및 민속연구소 연구생

-1963-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평안남도 현역미술가

-1982년 이후 남포미술창작사 미술가

-1990년 작고

 

* 안상목의 풍경화들은 그 개개의 작품에 관통되어 있는 일반적인 공통성 , 즉 그가 아니고는 그릴 수 없는 고유성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나무와 바위, 물 들을 그리는데서 표현되고 있는 선과 점, 색들의 고유한 형상방법은 정통에 의거하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혁신되고 개성화 되어있다. (조성력대미술가편람 480-484쪽 인용)


작품번호 : 2219

작가 : 정영만

제목 : 금강산여름

크기 : 96x50

제작 : 1992

가격 : 

정영만 - 금강산여름 ( 96x50 )
정영만 - 금강산여름 ( 96x50 ) : 낙관

 

정영만 (1938 - 1999) 약력

1938년 강원도 원산시 명석동 출생

1962년 평양미술대 졸업

1966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1974년 공훈예술가 

1978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2.16장작실장

1979년 인민예술가

1989년 만수대창작사 창작부사장, 김일성상 수상

1990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91년 로력영웅칭호 수여

1997년 2중로력영웅칭호 수여

1999년 6월 17일 작고

 

* 1973년부터 15년 동안 만수대창작사 창작실에서 정영만과 함께 창작생활을 했던 선우영(인민예술가, 2009년 작고)은 정영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하고 있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들의 특징은 물론 개별적 바위들의 생김새 그리고 동석동골 안으로 흘러드는 아침 안개로부터 관음련봉 사이를 감돌아 질주하는 구름안개에 이르기까지 금강산의 기상과 특징들을 창작한 정영만 동지의 금강산 작품들은 그 생동성과 진실성으로 하여 우리들을 탄복하게 하였다. 참으로 정영만동지의 자연에 대한 목적 지향적이고 사색적인 관찰은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기풍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정영만과 그의 창작‘, 평양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0년 간행, 131-133쪽에서 인용)


작품번호 : 2228

작가 : 정종여

제목 : 양계장

크기 : 64x97

제작 : 1979

가격 : 

정종여 - 양계장 ( 64x97 )

 

 

정종여 (1914-1984) 약력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둘째 아들로 출생

- 1933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1940년 졸업

- 1936년~1944년 선전(鮮展)에서 입선 6회, 특선 2회

- 1951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1952년부터 10년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교원, 강좌장

- 1953년 이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 1955년 '굴진'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6년 '5월의 농촌'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8년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61년 이후부터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

- 1974년 공훈예술가

- 1982년 인민예술가

- 1978년 이후 동맹현역미술가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미술가로 활동

- 1984년 작고


작품번호 : 2233

작가 : 정창모

제목 : 가을국화

크기 : 40x131

제작 : 1998

가격 : 

정창모 - 가을국화 ( 40x131 )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 정창모는 풍경화와 화조만을 그린 작가이다. 인물화나 동물화 등 다양하고 폭이 넓은 영역을 형상화했던 다재다능한 작가는 아니다. 북한 발행 ‘조선력대미술가편람’에서 언급한 대로 정창모의 작품 수가 '수천 점'에 이른다고 한다면, 작품의 품질과 희소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우려해서 편람 533쪽 하단 부분에 다음과 같이 정창모의 다작을 옹호하고 있다.

'정창모는 자기의 창작을 인민에 대한 복무로 접근시켰다. 항간에 많이 류포되고 있는 정창모의 그림은 한 점이라도 더 인민들에게 주자는 그의 소박하면서도 진실한 창작 태도의 결과이다.’

 

*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작품번호 : 2265

작가 : 최계근

제목 : 산촌의아침

크기 : 96x60

제작 : 1997

가격 : 

최계근 - 산촌의아침 ( 96x60 )
최계근 - 산촌의아침 ( 96x60 ) : 낙관

 

최계근 (1942- ) 약력

-1942년 남포시에서 출생

-강선제철소에서 일하면서 현지파견미술가 송찬형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59년 평양미술대학 입학

-1966년 그의 졸업 작품 '강철의 전사들(232x143cm)'은 제9차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1966-1974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단장

-1974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94년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

-1996년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위원장

-1999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과 집행위원

-인민예술가로 수예가인 공정옥이 그의 아내이다.

 

* 최계근은 비교적 복잡한 다인물구상처리에서 각이한 인물들의 개성적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묘가 확고하고 인물들의 각이한 행동성격에 대한 표현력도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다. 색에 대한 감각도 있고 화면에서 색채통일도 잘 보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02쪽 인용)


작품번호 : 2283

작가 : 최창호

제목 : 백두산의봄

크기 : 130x65

제작 : 1997

가격 : 

최창호 - 백두산의봄 ( 130x65 )
최창호 - 백두산의봄 ( 130x65 ) : 낙관

 

최창호 (1960 - ) 약력

 

-1960년 함경북도 연산군에서 출생

-1983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이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9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첫 승리를 거둔 동지들과 함께'로 금메달 수상

-1994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첫 승리' 금메달 수상

-1997년 공훈예술가 

-2012년 인민예술가

 

* 최창호는 정영만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다.


작품번호 : 2289

작가 : 한명렬

제목 : 동백꽃

크기 : 135x70

제작 : 1995

가격 : 

한명렬 - 동백꽃 ( 135x70 )
한명렬 - 동백꽃 ( 135x70 ) : 낙관

 

한명렬 (1926-작고) 약력

-1926년 전라북도 익산군에서 출생

-1949년 홍익대학교 미술과에 입학하여 배운성, 유진명, 이응로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업을 이어가다 6.25 전쟁시기에 의용군으로 인민군대에 입대

-1954년 제대 후 신의주 법랑철기공장에서 미술가로 있었다.

-1963년 '첫 솜씨'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65년 '대동교복구'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3등상

-1975년 '내금강의 진주담'으로 김정일위원장 표창

-1976년부터 평안북도 미술창작사에 소환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하다가 송화미술원에서 말년을 보냈다.

-1988년 공훈예술가

-작고년도 미상


작품번호 : 2303

작가 : 황영준

제목 : 금강산계곡

크기 : 158x59

제작 : 1998

가격 : 

황영준 - 금강산계곡 ( 158x59 )
황영준 - 금강산계곡 ( 158x59 ) : 낙관

 

황영준 (1919-2002) 약력

 

-1919년 충청남도 룡산군 계룡산에서 출생. 옥천군 보통학교졸업

-1931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후소회'에 입학하여 리석호, 김기창, 장우성 등과 함께 공부하였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되어 전투부대에 파견되어 미술창작활동을 했다.

-1954-1960년 평양미술대학 교원

-1966년 이후부터 평안남도 남포시 미술가동맹 위원장

-1966-1985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1988년 공훈예술가

-이후 송화미술원 고문을 지냈다.

-2002년 작고

 

* 황영준은 주요 묘사대상의 형태처리를 선묘위주로 하면서 짧은 선과 점으로 형상을 완결짓고 있으며, 색채처리에서도 자기만의 독특한 형상방법을 가지고 있다.

 

* 황영준은 자기의 창작개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30대에 싹이 트고, 40대에 대를 세우기 시작한 개성화가 끊임없는 자양분을 받아 50대에 비로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379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