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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전시 판매전

(종료) 2023년 제30회 전시판매전 (4/17-4/30)

1. 판매작품 : 조선화 16점

2. 전시·판매기간 : 2023년 4월 17일 ~ 4월 30일

3. 구매문의 : 010-4432-4676

4. Email : rheo343@naver.com

 

 


작품번호 : 2003, 2004 (2점)

작가 : 강호

제목 : 고향집, 교외에서

크기 : 22x34, 29x41

제작 : 1964, 1957

가격 : 

 

강호 - 고향집, 감정서, 교외에서
강훈 - 고향집(22x34)
강훈 - 교외에서(29x41)
장일남 친필 감정서

 

 

 

강호 (1908-1984) 약력

북한발행(1999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0~263쪽)의 4쪽 분량에 걸쳐 ’강호 약력서‘를 게재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8년 :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소작농의 맏아들로 출생.

-1921년(13세) : 일본 경도회화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심부름꾼, 우유와 신문배달 등 고학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1927년(19세) : 서울에서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동맹’에 가맹하여 김복진에 이어 미술부와 영화부를 책임지고 사업.

-1932년(24세) : 월간잡지 ‘우리 동무’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38년(30세) : ‘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1942년까지 4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1946년(38세) : ‘북조선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

-1946-1950년 : 한국전쟁 직전까지 남조선연극동맹서기장

-1950-1980년 : 평양연극영화대학과 평양미술대학 예술학부 교수학직을 수여받고(1961년), 학부장, 강좌장을 지냈다.

-1965년 :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영화미술 ‘생의 노래’로 2등상을 수상.

 

* “생의 노래”는 강호의 풍부한 창작경험과 예술적 분석력, 높은 조형적 창작능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1쪽 인용)

 

* 강호는 북한정권수립 초기 소위 프로레타리아 문학예술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북한무대 및 영화미술의 선각자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후비양성, 도서집필사업을 통하여 북한미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263쪽 인용)

 

* 현재 북한의 수채화를 대표하는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제자이며, 공훈예술가 강신범과 강신일이 강호의 아들이다.

 

* 인민예술가 장일남이 강호의 수채화 ‘교외에서’ 그림 뒷면에 자필로 ‘강호의 진품임’을 증명하는 자필확인서를 써준 경위는 다음과 같다.

북한창작사가 해외그림판매를 위해 북한화가들을 개별 방문하여 수집한 북한작품 중에서 강호의 그림을 발견한 장일남은 매우 놀랐다고 한다. ‘어데서 선생님의 그림을 구하셨습네까’ 하면서 해외로 팔려나간 것에 대해 무척 아쉬워하면서 자필확인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작품번호 : 2010

작가 : 김린권

제목 : 기러기

크기 : 68x137

제작 : 1995

가격 : 

김린권 - 기러기(68x137), 낙관

 

 

김린권 (1925 - 2004) 약력

 

-1925년 함경남도 인흥군에서 출생

-1938년부터 10년간 흥남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전문학교에 입학

-1951년 구소련 레닌그라드 레핀미술대학에서 6년간 미술공부를 하였다.

-1957년 귀국하여 문화선전성 지도원

-1964년-1982년 조선미술가동맹 영화 및 미술분과 위원장

-1965년 정종여와 함께 조선미술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가졌다.

-1978년 공훈예술가

-1983년-1994년 문학예술작품 심사위원

-2004년 작고할 때까지 송화미술원 서기장으로 있었다.

-2004년 작고


작품번호 : 2017

작가 : 김상직

제목 : 내가의 정서

크기 : 151x71

제작 : 1998

가격 : 

 

김상직 - 내가의 정서(151x71)
김상직 - 내가의 정서(151x71) : 낙관

 

김상직 (1934 - 작고) 약력

 

-1934년 4월 함경북도 라진군에서 출생

-로동을 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여 20대 때 유화 12점을 국가미술전람회에 출품.

-1961년 27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벽화를 수업받았고, 대학시절 리석호로부터 다년간 개별지도를 받았으며 1965년에 졸업

-대학졸업후 평양학생소년궁전 미술교원, 조선미술가동맹, 평양미술대학교원과 강좌장, 중앙미술창작사 창작생활과 후비육성사업을 하였다.

-1977년 벽화 “산전막에 남긴 사랑”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을 수상

-1996년 새로 발족한 송화미술원 원장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활동했다.

-공훈예술가를 수여받았다.

 

* 벽회창작으로 시작된 그의 창작활동은 조선화창작으로 그의 전성기를 보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69쪽 참조)


작품번호 : 2025

작가 : 김성근

제목 : 바다파도

크기 : 196x74

제작 : 1999

가격 : 

김성근 - 바다파도(196x74)
김성근 - 바다파도(196x74) : 낙관

 

 

김성근 (1945 - ) 약력

 

-1945년 7월 평안북도 천마군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받고 기계공장에서 로동자로 일했으며 군복무를 거쳐 1971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72-1975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

-1986년까지 그는 명확한 전문없이 자연을 이것 저것 제기 되는대로 그리다가

-1987년(42세)부터 “총석정의 파도”를 그려 파도그림을 주동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하여 파도의 전문가로 “김파도”라고까지 불리우게 되었다.

-1990년 이딸리아에서 진행된 국제수채화경연에서 3등에 당선되었다.

-1991년 공훈예술가

-1993년 그의 대표작 “해금강의 파도”(18mx8m)를 제작했다.

-1994년 김정일로 부터 2차례에 걸쳐 “대걸작”이라고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8년 인민예술가

 

* 김성근은 바다를 형상화하면서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가 아니라 부단히 움직이며 변하는 바다, 격랑을 일으키며 솟구치는 파도, 폭풍을 일으키며 광란하는 파도를 형상화하여 시련과 난관을 뚫고 나가는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32쪽 인용)


작품번호 : 2053

작가 : 리률선

제목 : 호랑이

크기 : 69x134

제작 : 1997

가격 : 

리률선 - 호랑이(69x134), 낙관

 

 

리률선 (1933 - ) 약력

 

-1933년 황해북도 은천군에서 출생

-1949년 평양체신전문학교 졸업 후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중상을 입었다.

-1952년 평양미술대학입학, 1957년 졸업

-1961년 "간석지개간"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8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

-1980년 공훈예술가, 1992년 인민예술가

-1988년 "진펄길을 헤치고"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2등상

-1957~1998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 부교수, 조선화학부장

-196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 중앙위원, 집행위원으로 활동

-미술작품심의위원회 심의위원, 국가학위학직 심의위원을 지냈다.

-저서로는 “조선화법”(1983년), “조선화화법기초”(1984년)이 있다.


작품번호 : 2069

작가 : 리석호

제목 : 매화꽃나무

크기 : 31x130

제작 : 1966

가격 : 

리석호 - 매화꽃나무(31x130) , 낙관

 

리석호 (1904-1971) 약력

-號는 일관으로 경기도 안성군에서 서자출신으로 출생하여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21세인 1925년에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안중식의 서화협회에 들어갔다.

-1928년 이당 김은호는 자기의 개인화숙에 그를 옮겨놓고 전문적인 지도를 했다.

-1927-1929 선전(鮮展) 서예부 입선

-1934-1944 선전(鮮展) 동양화부 입선 8회

-1950년 조선미술동맹에 가담 후 월북

-1951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1956년, 1959년, 1960년에 월남과 구소련을 조선문화대표단으로 방문

-1956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국화”로 1등상 수상

-195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해바라기”로 1등상 수상

-1957년 김일성주석 표창장

-1958년 작품 “청봉”으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1등상 수상

-1959-1963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

-1971년 작고

 


작품번호 : 2083

작가 : 문화춘

제목 : 지안개계곡

크기 : 130x65

제작 : 2000

가격 : 

문화춘 - 지안개계곡(130x65)
문화춘 - 지안개계곡(130x65) : 낙관

 

문화춘 (1938 - ) 약력

 

-1938년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출생하여 해방후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문하연은 평양음악대학 초대 학장으로 교육사업에 종사한 집안이였다.

-문화춘은 17세인 1954년에 평양미술대학 예비과(2년), 본과(4년)을 수료하고,

-1960년에 졸업하여 모교의 교원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이후 철도부창작사 조선화단 창작가, 창작실장

-1971년 그의 대표작 “내금강의 아침(90x175cm)"으로 김정일로부터 표창장.

-1987년 공훈예술가

-1989년 100여점을 가지고 개인미술전람회를 가졌다.


작품번호 : 2095

작가 : 방학주

제목 : 봄맞이춤

크기 : 52x119

제작 : 1996

가격 : 

방학주 - 봄맞이춤(52x119) , 낙관

 

 

 

방학주 (1943 - ) 약력

 

-1943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출생

-1956-1960 함경북도 도미술가동맹 야간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68년 평양미술대학 출판화학부를 졸업

-1968-1987년까지 함경북도 미술창작사에서 활동하였고,

-1987년 이후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2년 공훈예술가

-1995년 인민예술가

 

* 그는 부드럽고 섬세한 수법으로 그림을 수예품처럼 우아하고 아름답게 형상화 하고, 특히 인물화와 풍경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미술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 그의 작품 “참대숲”은 남한/해외에서 인기가 높다.(조선력대미술가편람 710-711쪽 참조)


작품번호 : 2105

작가 : 선우영

제목 : 금강산에서

크기 : 97x64

제작 : 1999

가격 : 

선우영 - 금강산에서(97x64)
선우영 - 금강산에서(97x64) : 낙관

 

선우영 (1946-2009) 약력

 

-1946년 평양시에서 출생

-1969년 평양미술대학 산업미술학부 졸업

-1969-1972년 중앙미술창작사 창작가

-1972-2009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2009년에 사망했다.

-1987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장군님의 뜻을 안고”로 1등상 수상

-1989년 공훈예술가

-1992년에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 진채세화의 대가로서 그의 특징은 “거의 모든 풍경화에서 중경과 원경에 놓여있는 대상들의 묘사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의 생략과 같은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더 파고들어야 한다“고 선우영은 주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48쪽 인용)

* 그가 창작한 “금강산석가봉”과 “범”은 세화기법으로 그린 조선화중에서 가장 우수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번호 : 2115

작가 : 송시엽

제목 : 호랑이

크기 : 81x151

제작 : 1996

가격 : 

송시엽 - 호랑이(81x151), 낙관

 

 

송시엽 (1934 - ) 약력

 

-1934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출생

-1955-1959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59-1995년 국립미술출판사,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미술가로 창작활동을 하였다.

-1980년 공훈예술가

-2006년 인민예술가

-1995년 이후 송화미술원 서기장

 

* 송시엽은 청소년잡지들과 여러 출판물에 600여건의 만화를 그렸으며 그림책 3권을 그려 출판하였다. 또한 그는 1967년부터 선전화 창작을 전문으로 하면서 120여점의 전투적이며 호소성 있는 선전화를 그렸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81쪽 인용)


작품번호 : 2225

작가 : 정영만

제목 : 금강산

크기 : 102x61

제작 : 1997

가격 : 

정영만 - 금강산(102x61)
정영만 - 금강산(102x61) : 낙관

 

정영만 (1938 - 1999) 약력

1938년 - 강원도 원산시 명석동 출생

1962년 - 평양미술대 졸업

1966년 -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1974년 - 공훈예술가 

1978년 -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2.16장작실장

1979년 - 인민예술가

1989년 - 만수대창작사 창작부사장, 김일성상 수상

1990년 -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91년 - 로력영웅칭호 수여

1997년 - 2중로력영웅칭호 수여

1999년 - 6월 17일 사망

 


작품번호 : 2228

작가 : 정종여

제목 : 양계장

크기 : 64x97

제작 : 1979

가격 : 

정종여 - 양계장(64x97), 낙관

 

정종여 (1914-1984) 약력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둘째 아들로 출생

- 1933년 일본 오사카미술학교 입학, 1940년 졸업

- 1936년~1944년 선전(鮮展)에서 입선 6회, 특선 2회

- 1951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 1952년부터 10년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강좌교원, 강좌장

- 1953년 이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집행위원

- 1955년 “굴진”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6년 “5월의 농촌”으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58년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로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 1961년 이후부터 문예총중앙위원회 위원

- 1974년 공훈예술가, 1982년 인민예술가

- 1978년 이후 동맹현역미술가로 만수대창작사 조선화단 미술가로 활동

- 1984년 작고


작품번호 : 2233

작가 : 정창모

제목 : 참새와 국화

크기 : 40x131

제작 : 1998

가격 : 

정창모 - 참새와 국화(40x131), 낙관

 

 

정창모 (1931-2010) 약력

-1931년 12월 전라북도 전주 완산동에서 가난한 로동자의 2째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 한국전쟁시 북한 의용군에 입대, 1956년까지 군복무

-1956년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위원장이였던 림군홍으로부터 각별한 지도를 받았다.

-1957년 26세에 평양미술대학에 입학

-1975년 김정일위원장의 지시로 북한최고의 예술가들을 만수대창작사로 집결시켜 종합적인 미술창작사로 발전시켰다. (정영만, 정창모, 선우영, 최계근, 홍성철 등이 차출됨)

-1977년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풍경화실 실장

-1977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80년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국가작품심의위원회 위원

-2000년 평양 국제문화회관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개인미술전시회를 가졌다.

-2000년 8월 14일 이산가족 상봉때 서울을 방문했다.

-2005년 김일성상 수상, 예술학박사 수여받음

-2005년 중국에서 개최된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

 

* 정창모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15년간에 무려 2,000여점에 달하는 풍경화와 화조그림을 창작하였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533쪽 인용)

* 2010년 사망하기까지 전라북도 전주시에 거주하는 여동생들과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작품번호 : 2266

작가 : 최계근

제목 : 마을느티나무

크기 : 139x48

제작 : 1998

가격 : 

최계근 - 마을느티나무(139x48)
최계근 - 마을느티나무(139x48) : 낙관

 

 

최계근 (1942- ) 약력

-1942년 남포시에서 출생

-강선제철소에서 일하면서 현지파견미술가 송찬형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59년 평양미술대학 입학

-1966년 그의 졸업작품 “강철의 전사들”(232x143cm)은 제9차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김일성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그의 출세작이 되었다.

-1966-1974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 만수대창작사 조선화창작단 단장

-1974년 공훈예술가, 1989년 인민예술가

-1994년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

-1996년 미술작품국가심의위원회 위원장

-1999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과 집행위원

 

* 인민예술가로 수예가인 공정옥이 그의 아내이다.

 

* 최계근은 비교적 복잡한 다인물구상처리에서 각이한 인물들의 개성적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묘가 확고하고 인물들의 각이한 행동성격에 대한 표현력도 비교적 높은 수준에 있다. 색에 대한 감각도 있고 화면에서 색채통일도 잘 보장하고 있다. (조선력대미술가편람 702쪽에서 인용)


작품번호 : 2283

작가 : 최창호

제목 : 백두산의 봄

크기 : 130x65

제작 : 1997

가격 : 

최창호 - 백두산의 봄(130x65)
최창호 - 백두산의 봄(130x65) : 낙관

 

최창호 (1960 - ) 약력

 

-1960년 함경북도 연산군에서 출생

-1983년 평양미술대학 조선화학부 졸업, 이후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90년 국가미술전람회에서 “첫 승리를 거둔 동지들과 함께”로 금메달 수상

-1994년 “첫 승리”로 국가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 수상

-1997년 공훈예술가

-2012년 인민예술가

 

* 최창호는 정영만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다.